[황희상 에세이] 체인(Chain)의 제왕 - 두 개의 탑

어쩌자고 종교개혁지 탐방 (23)


앞의 글에서 예고한 대로, 이번 글은 라 로셸 항구에 우뚝 선 ‘두 개의 탑’을 탐방하기로 한다. 선박이 항구로 진입하는 길목을 철벽처럼 방어하는 두 개의 탑에는 놀라운 비밀이 숨겨있다. 물길 아래로 체인이 연결되어, 도시로 들어오는 선박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원치 않는 배가 진입할 때는 체인을 걸어버리면 된다. 리슐리외의 막강한 군대가 항구도시 라 로셸을 함부로 칠 수 없었던 이유 중에는 바로 이런 방어장치도 있었을 것이다.


사실 라 로셸에는 총 3개의 타워가 있는데, 항구에서 보이는 두 개의 타워가 성 니꼴라 타워(the Saint Nicolas Tower)와 사슬 타워(the Chain Tower)다. 사슬 타워에서 해안 성곽을 따라 더 걸어가면 조그마한 등불 타워(the Tower of the Lantern)가 하나 더 있다. 이 탑 주변을 직접 발로 걸으며 꼼꼼히 살펴보자. 바닷물이 닿아있는 방파제도 거닐어보자. 필자의 경우에도, 이곳을 직접 걸어본 경험이 ‘특강 종교개혁사’ 집필에 큰 역할을 했다. 작가적 상상력 발휘에 큰 도움을 준 것이다.

생 니꼴라 타워

바다 쪽에서 도시를 볼 때 우측에 있는, 가장 큰 타워, 생 니꼴라 타워에 먼저 들어가자. 이곳 타워에는 투어 프로그램이 있다. 1층은 입장료 판매와 서점, 기념품 등으로 꾸며져 있다. 타워 1개만 입장하거나, 2개 모두 입장하는 등, 티켓에 차이가 있으니 주의하자. 타워를 겉으로만 보면 입장료가 꽤 비싸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이런 오래된 타워에 무슨 볼거리가 있겠나 싶겠지만, 마음을 고쳐먹자. 티켓을 사면 두툼한 유인물을 한 권 준다. 생 니꼴라 타워의 층별 구조 설명과 구조적 변천사 및 라 로셸 함락전 등의 정보가 빼곡히 담겨 있다. 물론 불어로 되어 있어서 난해하긴 하나, 사진과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안내 책자를 들고서 타워 한 층 한 층 꼼꼼히 둘러보자. 밖으로 난 창을 통해 교대로 대포를 쏠 수 있는 공간, 화장실, 예배실 등을 둘러보자. 중세 초기에 만든 벽 장식의 상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등을 생각하다 보면 ‘탐구의 희열’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타워 꼭대기에는 비록 허접한 성능이나마 망원경도 준비되어 있다. 바다 쪽을 보면서 저 멀리 방파제 때문에 들어오지 못했던 영국군 함대를 상상해봐도 좋겠지만, 거꾸로 돌려서 구도시 쪽을 보는 것도 가능하다.

▲ 타워 꼭대기에서 바다 쪽을 내려본 광경. 저 멀리 큰 바다가 보이고, 배들이 한꺼번에 밀고 들어올 수 없도록, 수로가 좁게 나있다. 항구 방어에 유리한 천혜의 조건이다. 나중에 보니 요트 한 척이 정확히 한 가운데 수로를 따라 조심스레 일직선으로 입항하고 있었다.

생 니꼴라 타워에서 내려오면 1층의 기념품 숍과 서점에 잠깐 들러보자. 특히 서점에서 판매하는 책들은 인상 깊다. 리슐리외 추기경의 초상화를 책 표지에 과감하게 그려 넣은 책이 마음에 들어 펼쳐 보았다가 경탄했다. 제목부터 인상적이다. “그들은 프랑스의 역사를 바꾸었다” 이런 유의 역사 책은 보통 표지만 그럴싸하고 속지는 글자만 가득하거나 그림 몇 장 삽입된 게 전부인데,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프랑스 역사에 관한 인물과 사건 등이 사진과 그림, 글 등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은 물론, 군데군데 기름종이로 만든 편지봉투가 내지에 붙어 있는데 그 안에 역사적 자료가 될만한 편지와 선언서 등이 원본 형태로 디자인되어 꽂혀 있는 식이다. 출판사를 운영하는 필자로서는 이 책의 제작비가 도대체 얼마나 들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렇지!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하는 생각이 동시에 밀려왔다.


확실히 라 로셸이 프랑스 역사에 중요한 도시라서 그런지, 항구를 지키던 탑에 불과한 곳의 기념품 코너에 놓인 책 치고는 수준 높은 역사 책이 가득했다. 필자는 “프랑스 신교의 역사”라는 책을 발견하고 눈이 번쩍 띄었지만, 책이 묵직한 만큼 책값도 묵직했고, 어차피 불어를 몰라서 그냥 두고 왔다.


책 표지를 장식한 십계명 두 돌판은 신교도를 상징하는 그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 로셸이나 누아용 등 프랑스 신교도 관련 박물관에는 대부분 이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렇다. 신교도는 율법을 중시했다. 당시 그들에게 뒤집어 씌웠던 누명처럼, 그들은 결코 율법 폐지론자들이거나 부정부주의자, 권위와 질서의 파괴자들이 아니었다!

▲ 건너편에 있는 체인 타워. 시간이 많을 경우 – 그리고 입장 티켓을 두 개의 탑 통합 세트로 샀을 경우 – 들어가 보자. 필자는 타워보다는 바닷가 쪽 주변 시설물을 둘러보는 것에 시간을 썼다.

라 로셸 성곽, 해자, 구도심 골목길

비 오는 토요일, 라 로셸 풍경은 사뭇 차분해졌다. 라 로셸 공성전의 현장을 더 확인하려면 성곽 밖으로 나가서 해자를 따라 걸어보는 것이 좋다. 현재는 산책로로 조성되어 있어서 전쟁터의 느낌은 사라지고 없지만, 역사를 알고 그 길을 걸으면 느낌이 다르다. 성문 밖이었음에도 드문드문 성곽의 흔적으로 보이는 돌무더기들이 남아있다. 성곽 바깥에 유료주차장이 있고, 그 길로 죽 따라 들어가면 작은 물길과 함께 숲길이 나 있다. 이것이 라 로셸 공성전 당시 해자의 흔적이다.


약간 오싹해졌다. 그 옛날 이곳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위그노들이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선 이 땅에 똑같이 서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바라봤을 하늘도 지금 우리가 보는 하늘과 똑같은 하늘이다. 수백 년 된 도시에 머물면서 그 당시를 떠올리는 이 순간은 꿈만 같다. 역사를 모르고 이 자리에 서면 도무지 아무 느낌도 없을 그런 장소일 뿐이다. 그래서 거길 왜 가나 싶은 그런 곳이다. 그러나 알고 나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고 나면 보이는 것이 달라지는 법이다.

라 로셸이 정확히 그런 곳이다.

황희상 (“특강 종교개혁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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