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이혼 전부터 상습적으로 폭력을 휘둘러 왔다. 이혼 뒤에도 위치추적기로 전 부인 A씨를 찾아내 계속해서 폭력과 협박을 일삼았다. A씨는 경찰에 3차례 신고하고 접근금지명령을 신청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결국 A씨는 경찰의 외면 속에 주차장에서 남편의 손에 살해됐다.

B씨는 결혼 전부터 남편에게 폭행을 당했다. 이혼 절차를 밟던 그는 자녀를 보러 남편이 있는 집에 방문했다. 남편은 그를 구타하고 성폭행했다. 경찰에 신고했지만 B씨를 찾아온 건 경찰이 아닌 남편이었다. 경찰이 남편에게 신고 사실을 흘린 게 원인이었다. B씨는 끝내 남편에게 죽임을 당했다.

지난해 경찰에 신고된 가정폭력 사건의 84.2%는 가해자가 입건되지 않고 흐지부지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지난해 112에 가정폭력으로 신고된 24만8660건 중 4만1720건이 입건 처리됐다고 11일 밝혔다. 전체 신고 건수 중 실제로 입건된 비율은 16.8%에 불과한 것이다. 최근 4년간 가정폭력 신고는 매년 20만건이 넘는다. 위의 두 사례는 여성단체 한국여성의전화를 거쳐 진상조사위에 접수된 사건 중 일부다.

진상조사위는 경찰이 피해자 보호 조치를 취하려고 절차를 밟는 동안 최대 10일이 넘는 시간적 공백이 발생해 사건이 흐지부지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함께 지적했다. 관련법인 가정폭력처벌법으로 피해자 보호를 하기가 사실상 어렵다는 판단이다.

현행법상 피해자 보호조치를 위해서는 경찰의 신청, 검사의 청구, 법원의 결정, 다시 경찰의 집행 과정을 거쳐야 한다. 가해자 수사·처벌과는 무관하게 형법이나 형사소송법의 적용을 받아야 해서 긴급한 사안이더라도 신속하게 진행되기 어렵다.

이런 사이 한 해에 발생하는 가정폭력 피해자는 100명에 근접하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2017년 1년간 언론에 보도된 살인 사건을 분석한 데 따르면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총 85명의 여성이 살해당했다. 주변인에 살해당한 여성까지 포함하면 90명에 이른다.

진상조사위는 “출동 경찰관들의 대응은 ‘범죄가 중단될 수 있다’는 희망을 줘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대응 태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고 설명했다. 진상조사위는 경찰에 초기 대응체계 정비 및 출동 경찰관 업무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응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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