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극한 대립 양상으로 치닫던 호르무즈 해협 사태에 영국까지 말려드는 모양새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자국 근해를 지나던 영국 유조선을 나포하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령 지브롤터가 대(對)시리아 제재 위반 혐의를 받는 이란 유조선을 나포한 데 대한 보복 조치로 추정된다. 다만 이란 측은 유조선 나포 시도는 없었다고 부인했다.

이란 혁명수비대 소속 고속정 수 척은 10일(현지시간) 페르시아 만을 거쳐 호르무즈 해협에 진입하던 영국 유조선 ‘브리티시 헤리티지’를 나포하려다 영국 해군 호위함의 제지를 받았다고 CNN과 폭스뉴스 등 미국 언론들이 자국 군 관리를 인용해 보도했다. 브리티시 헤리티지는 이라크를 출발해 유럽으로 향하던 참이었다. 사건이 벌어지던 당시 미 해군 소속 유인 정찰기가 상공에서 영상을 촬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 관리에 따르면 이란 고속정은 유조선에 다가가 진로를 바꿔 이란 영해 인근에 정선하라고 지시했다. 직후 약 8㎞ 후방에서 항해하던 영국 해군 호위함 ‘HMS 몬트로즈’가 개입해 고속정에게 물러나라고 경고했다. 몬트로즈가 30㎜ 기관포를 겨누며 발포 위협을 하자 고속정은 공격을 포기하고 돌아갔다.

영국 정부는 11일 발표한 성명에서 브리티시 헤리티지를 겨냥한 이란 측의 나포 시도가 있었다고 확인했다. 영국 정부는 “이란 함정 3척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던 영국 유조선의 항해를 방해하려 했다”며 “몬트로즈가 구두 경고하자 이란 함정이 되돌아갔다”고 밝혔다. 반면 이란 혁명수비대는 “지난 24시간 동안 영국 등 외국 선박과의 조우는 없었다”며 보도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탈퇴를 비판하는 영국이 이란과 갈등을 빚는 데는 사연이 있다. 영국령 지브롤터 당국은 지난 4일 영국 해군과의 공조 하에 시리아로 원유를 수송하던 이란 유조선을 억류했다. 이 유조선이 유럽연합(EU) 제재 리스트에 오른 시리아 바니아스 정유공장에 원유를 공급하려던 것으로 의심됐기 때문이다. 바니아스 공장은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통제하는 시설이다.

이란은 유조선 억류를 즉각 중단하라며 격렬히 반발해왔다. 이란 내부에서는 영국 유조선 억류를 보복 조치로서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이란 혁명수비대 장성 출신 모흐센 라자에이 국정조정위원회 사무총장은 최근 트위터에 “영국이 이란 유조선을 풀어주지 않으면 영국 유조선을 억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혁명수비대의 영국 유조선 나포 시도 직전 열린 내각 회의에서 “영국은 안보 불안을 유발하고 있다”면서 “조만간 그 결과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을 겨냥한 이란의 호전적 발언이 계속되면서 영국 해군은 몬트로즈를 이 해역에 파견해 자국 유조선을 호위토록 했다. 유조선 브리티시 헤리티지는 이란의 나포 우려 때문에 최근 수일 동안 호르무즈 해협으로 나오지 않고 페르시아 만에 머물고 있었다.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 오만해로 나가려던 영국 유조선 ‘퍼시픽 보이저’가 이란 근해에 정선하면서 나포설이 한때 돌았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해 JCPOA를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이란 제재를 복원한 이후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란은 대응 조치로서 지난 5월 JCPOA 합의 사항 일부를 이행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이란은 미국과의 대화를 일절 거부한 채 우라늄 생산량을 늘리고 농축도를 높이면서 미국을 압박해왔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미군 무인정찰기(드론)을 격추해 미국이 보복 타격을 검토하다가 막판에 취소하는 일도 있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에 추가 제재를 내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이란은 오래 전부터 JCPOA를 위반하고 우라늄 농축을 해왔다”고 주장하며 “JCPOA는 어차피 몇 년 안에 파기될 운명이었다. 곧 대규모 추가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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