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전진이 기자 ahbex@kmib.co.kr

A씨는 충북 제천의 모 고등학교 재학 당시인 2016년 3월부터 2017년 5월까지 B씨 등 총 4명에게 폭행 및 금품 갈취 등을 당했다. 가해자들은 각목, 소주병 등으로 A씨를 폭행했고, 불법 스포츠도박을 시켜 돈을 벌어오게 했다. 또 A씨가 반항을 하면 “여동생을 성폭행하겠다”고 협박했다. 우여곡절 끝에 법적 처분이 이뤄지기는 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4명 중 1명에게 소년법상 보호처분이 내려졌다. 나머지 3명은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았다. 전학 조치가 된 것도 1명 뿐이었다.

이제 스무살이 된 A씨는 학교 폭력의 후유증으로 아직까지 환청·환각 및 수면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A씨의 아버지는 이후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가해자들이 무죄로 풀려나자 “아들이 아파하는데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아들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국민일보는 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민일보 사무실에서 피해자 A씨의 어머니 박모씨를 만났다. 박씨는 재수사와 무혐의 처분 된 가해자들에 대한 형사처벌을 주장하고 있다. 직접 만난 박씨의 오른쪽 눈 망막 일부는 뿌옇게 손상돼 있었다. 아들이 병에 걸리고 남편이 세상을 떠난 충격으로 박씨는 당뇨병과 망막질환에 걸렸다. 최근에는 정신과 치료도 시작했다.

학교폭력 이후 2년… 힘들다는 생각은 사치

박씨는 남편의 유서를 보여주며 지난 2년의 시간을 털어놓았다. 그는 “아직 남편의 영정 사진을 치우지 못하고 있다. 아들이 너무 힘들어 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6쪽짜리 유서 곳곳에 글씨가 번져 있었다. A씨가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에 흘린 눈물 자국이었다.

학교폭력 혐의를 받는 가해자들이 무혐의 판결을 받자 피해자 아버지가 "아들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피해자 측 제공

그는 “가해자들의 사과가 아들의 병을 치료하는 데 도움이 될 거로 생각한다. 하늘에 있는 남편도 같은 생각일 거다”라며 “지금이라도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병원 동행 등 치료에 도움을 준다면 모든 법적 조치를 취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청주지방검찰청 제천지청에 재수사를 촉구하는 진정서를 낸 상태다.

그러면서 “아들이 가해자 또래 사람들을 만나면 두려워한다. 버스터미널 등 젊은 사람들이 많은 곳에 가면 화장실로 피해서 2~3시간이 넘도록 나오지 않는다”며 “택배 직원이 가해자와 닮았다며 소동을 피운 적도 있다”고 말했다.

“많이 힘들지 않냐”는 기자의 말에 박씨는 “힘든 것도 사치다. 솔직히 말하면 아무 생각도 안 든다.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할지 답답하다. 정말 사과만 해주면 좋을 텐데”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검찰도, 경찰도 우리 아들 사건을 종결된 사건이라고 한다. 뭐가 종결된 사건인가? 내 아들은 아직까지 피해를 보고 있다. 지금도 병원을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그림=전진이 기자 ahbex@kmib.co.kr


“‘지갑’ 빨리 학교 와라” 학폭위 후에도 계속된 괴롭힘

박씨는 가해자들과 나눈 대화의 녹취록을 기자에게 보여줬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 처분이 나온 뒤에도 가해자들의 괴롭힘이 계속됐다는 증거였다.

그는 “주범으로 지목된 B씨가 전학을 갔을 때까지만 해도 아들의 병세가 심하지 않았다”며 “학교폭력 후유증으로 학교를 못 가고 통원치료를 받는 아들에게 가해자들이 전화를 걸어왔다”고 말했다.

가해자들은 “네가 없으니깐 심심하다 빨리 와라” “지갑이 없다. 튀어와라”라며 피해자를 괴롭혔다. 박씨는 “그때부터 아들의 증세가 확 심해졌다. 말도 못 하게 상황이 더 안 좋아졌다”고 말했다.

가해자 중 한 명이 피해자 집 근처까지 찾아온 적도 있었다. 박씨는 막내딸과 집 밖을 나섰다가 집 근처 공원에서 아들이 가해자 C씨와 가해자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했다.

박씨는 “아들은 열중쉬어 자세로 가해자 앞에 서 있었고 가해자 일당은 술을 마시면서 웃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박씨가 C씨 일행에게 화를 내자 C씨가 쌍욕을 퍼부으며 “내가 학교폭력을 했다는 증거 있냐”고 소리쳤다. 이에 박씨는 C씨의 따귀를 때렸고 이후 C씨 부모가 전화를 걸어 “왜 우리 귀한 아들을 때리느냐”고 되레 따지는 상황이 벌어졌다.


“우리 아들이 많이 뺏어갔네요, 계좌 불러요 넣어드릴 테니”

학폭위 처리 과정에서도 어이없는 상황은 이어졌다. 가해자 측은 사과 대신 돈을 건넸다. 가해자 B씨의 어머니는 반성문 제출과 피해자 치료를 위한 병원 동행 등은 거부한 채 박씨에게 “계좌 번호 불러요. 입금해줄게요”라는 말만 반복했다.

B씨 아버지가 전화해 “피해자도 괴롭고, 가해자도 괴롭다. 애를 교도소에 보내겠다는 거냐”고 합의를 종용하기도 했다. 아예 케이크에 돈 봉투를 숨겨 보낸 적도 있었다. 지난해 12월 박씨의 큰딸 생일날이 지나고 며칠 뒤, B씨의 누나가 케이크를 가져왔다. 박씨는 “너무 화가 나서 케이크를 받지 않았다. 아파트 복도 밖으로 집어 던졌다”며 “나중에 B씨 어머니가 케이크 상자 안에 돈 봉투를 넣어놨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박씨는 “그 당시에 진심 어린 사과를 했으면 법정 싸움까지 안 갔다”며 “가해자 부모 중 한 명이 남편의 장례식 첫날, 내 단골집에 찾아가 ‘A씨 아빠 돌아가셨냐? 그 사람이 죽어서 내 아들이 피해를 입게 생겼다’고 행패를 부렸다”고 분노했다.

학교 폭력 가해자들이 피해자에게 돈을 달라는 내용이 담긴 페이스북 메시지 캡처. 피해자 측 제공

“경찰이 수사를 제대로 했다면 남편이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을까요”

박씨는 가해자들을 다시 법정에 세우기 위해 증인과 증거를 찾아다니고 있다. 재수사를 요구하려면 결정적인 추가 증인이나 증거가 필요했다. 한편으로 학교 폭력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아들을 간호하고 16세와 6세 두 딸까지 돌보면서 경찰을 설득할 증인과 증거를 찾는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박씨는 증인들을 찾아다니며 통화 내용을 녹음하는 습관이 생겼다며 기자에게 휴대전화 화면을 보여줬다. 휴대전화 녹음파일 목록에는 가해자들과 아들 친구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그렇게 박씨는 “새로 찾아낸 증인과 증언을 많이 찾아냈다”고 주장했다. 그는 “너무 억울해서 증인을 찾아 나섰다. 최근 증언을 해주겠다는 사람과 통화를 했다. 가해자들이 친한 척을 하면서 아들을 때렸다는 증언도 확보했다”며 “하지만 연락처를 경찰에 줄 수는 없다. 아들을 나쁜 사람 취급하는 경찰에게 내가 어떻게 증인에 대한 정보를 알려줄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경찰을 불신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경찰 관계자가 ‘증인 있으면 데리고 와 봐라. 아드님 주변 사람들이 아드님 욕을 많이 했다. 가해자들과 어울려 다니며 소위 일진이었다는 증언도 있었다’며 되레 우리 아이를 불량학생 취급했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또 “경찰이 증언을 묵살한 정황도 있다. 아들 친구들에게 ‘너희가 증언을 안 해줘서 가해자들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고 말하니 경찰에게 학교폭력 사실을 다 말했는데 증언이 안 들어가 당황스럽다는 답을 들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어 “경찰이 제대로 수사를 했다면 남편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 따위는 없었을 거다. 반 애들이 다 봤다는데 경찰이 그중 한 명에게라도 물어봤다면 사건이 이렇게까지 됐을까”라며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설마 이렇게까지 시간이 걸릴 줄 몰랐다.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지나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현재 청주지방검찰청 제천지청은 박씨 진정서를 받아 사건을 재배당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경찰 관계자는 “이 사건을 검찰이 재수사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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