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류회사 디자이너 A씨는 하계 신상품 발표를 코앞에 두고 상사인 팀장과의 갈등을 겪고 있다. 수차례 신제품 시안을 보고했지만 팀장은 ‘이번 시즌 콘셉트와 맞지 않는다’며 계속 보완을 요구했다. A씨는 “업무량이 평소의 배 이상 늘었다”며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다.

한 중견기업 직원 B씨는 직장 선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직장 선배는 ‘신입 사원들과 술 한 번 마셔보자’며 지속적으로 술자리를 마련할 것을 요구해왔다. B씨가 약속을 잡지 않자 선배는 “사유서를 써 와라” “성과급의 30%는 선배를 접대하는 것” 등의 발언을 했다.

A씨와 B씨 사례 중 16일부터 시행되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에 따라 괴롭힘으로 규정될 수 있는 사례는 무엇일까. 답은 B씨다. 선배라는 지위를 이용해 회사 업무와 관련이 없는 사적인 자리를 강요했기 때문이다. A씨의 팀장 역시 ‘직속 관리자’라는 우위의 지위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는 신제품 디자인 향상이라는 ‘업무상 목적’을 위해 지시를 내렸기 때문에 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

고용노동부가 최근 발간한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에 따르면 괴롭힘으로 인정되기 위해선 세 가지를 모두 충족해야 한다.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할 것,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을 것,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일 것이다.

게티이미지

매뉴얼을 보면 부하 직원에 대한 상사의 지나친 옷차림 지적은 괴롭힘으로 인정된다. 이를테면 감기에 걸려 회사 내에서도 겉옷을 입거나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에 대해 상사가 “옷에서 냄새가 난다” “그 옷은 3000원을 주고 산거냐”는 등 다른 직원들 앞에서 지속적으로 비난한 경우다.

근무시간 외에 모바일 메신저로 지시를 내리는 것도 괴롭힘에 해당된다. 대기업에 다니는 C씨의 경우 퇴근 이후나 주말에 술에 취해 팀 모바일 메신저 단체 채팅방에 하소연하는 글을 올리는 상사를 뒀다. 팀원들이 아무런 답을 하지 않으면 ‘왜 대답을 안 하냐’고 해 팀원 모두가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 고용부 관계자는 15일 “팀장이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본연의 업무 외의 반응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직장 내 괴롭힘에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부하 직원을 업무상 불필요한 회사 행사나 교육에 강제로 참여시키면 징계 대상이 될 수 있다. 직장인 D씨는 회사에서 마라톤을 강제로 실시해 일주일에 주2회 참여해야 했다. 훈련일지 작성 및 참여인원 수 파악을 위해 인증사진까지 제출했다. 간호사 E씨도 병원 이사장이 외부 교육기관을 불러 근무시간 외에 강제로 교육을 듣게 했다. 교육비 명목으로 300만~1000만원도 내야 했다. 두 명 모두 상사나 이사장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위반으로 신고할 수 있다.

반면 사회적 통념상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지 않은 상사의 요구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되지 않는다. 영업직원 F씨는 내년 영업소장으로 승진하기 위해 근무평점에서 A등급이 꼭 필요하다. 그런데 상사는 ‘F씨의 영업소 실적이 다른 지점보다 떨어진다’며 B등급을 통보했다. F씨는 “승진을 앞두고 상사의 배려를 기대했는데 내 승진을 고의로 막은 것 아니냐”고 문제제기했다.

그러나 ‘영업소 실적 부진’이라는 객관적 사실을 이유로 근무 성적을 낮게 준 건 인사권자의 정당한 업무범위에 속한다. 고용부 관계자는 “평가 저하가 의도적 괴롭힘이라고 볼 수 있는 다른 사실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 승진에서 누락돼 괴롭더라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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