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부천에 거주하는 김모씨는 최근 까맣게 타거나 그을린 지폐 3587장을 한국은행에 가져와 교환을 요청했다. 공장에 난 불이 내부에 있던 돈까지 집어삼켰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돈은 상당량이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잿더미였다. 초상화 일부나 숫자만 간신히 보이는 돈도 많았다.

이런 경우 탄 돈을 주고 새 돈을 받을 수 있을까. 가능하다. 단 멀쩡한 부분이 얼마나 되느냐가 관건이다. 기존 면적의 4분의 3 이상 남아 있어야 전액을 교환받을 수 있다. 5분의 2 이상 4분의 3 미만이면 액면가의 반만 인정해준다. 남은 부분이 5분의 2 미만이면? 그냥 휴지 조각이다. 폐기물 처리 비용은 받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김씨가 이런 기준에 따라 받아간 새 돈은 4957만원어치 2467장이다. 불에 탄 돈의 31%(1120장)는 고스란히 산화한 셈이다.


한국은행은 올 상반기 회수해 폐기한 손상화폐가 3억4520만장(2조2724억원)으로 지난해 하반기 3억500만장(2조2399억원)과 비교해 13.2%(4020만장) 늘었다고 16일 밝혔다.

올 상반기 회수 손상화폐는 지폐 3억3180만장(2조2712억원), 동전 1340만개(12억원)다. 지난해 하반기보다 지폐가 4300만장 늘고, 동전은 280만개 줄었다. 지폐와 동전은 세는 단위가 각각 ‘장’과 ‘개’로 다르지만 규모 총계를 낼 때 한은은 편의상 ‘장’으로 통일한다.

권종별 폐기 지폐는 1만원권이 53.7%인 1억7830만장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1000원권 1억3030만장(39.3%), 5000원권 1780만장(5.4%), 5만원권 540만장(1.6%) 순이었다. 동전은 44.9%인 600만개가 10원짜리였고 100원짜리가 그 다음으로 많은 470만개(35.3%)였다.


이번에 폐기된 손상화폐를 모두 새 화폐로 대체할 경우 483억원이 든다고 한은은 추산했다. 반기 기준 새 화폐 대체 예상비용이 그동안 300억원 초반을 유지해온 것과 비교하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올 상반기 비용은 지난해 하반기 314억원보다 53.8% 늘어난 금액이다. 한은 관계자는 “올해는 은행권 발주량이 줄면서 제조단가가 높아진 탓에 대체 예상비용이 예년보다 높게 잡혔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매년 한 해 동안 필요한 대체 화폐 규모를 예측해 새롭게 발행한다.

올 상반기 한은이 새롭게 내준 은행권은 12억9000만원으로 교환을 의뢰받은 전체 손상 지폐 14억2000만원어치의 91.3%다. 지난해 하반기 12억7000만원보다 1.9% 늘었다.

주요 손상 사유는 장판 밑 눌림, 습기에 의한 부패 등 부적절한 보관방법에 의한 경우가 가장 많은 1054건(5억8000만원)으로 전체 교환건수(2668건)의 39.5%를 차지했다. 세탁 또는 세단기 투입 등 취급상 부주의도 39.1%인 1042건(2억3000만원)으로 비슷한 비중을 보였다. 불에 탄 경우는 21.4인 572건이었지만 손상 금액이 4억8000만원으로 취급상 부주의의 2배가 넘었다.


한은이 공개한 지폐 손상 사례로는 치매를 앓는 가족이 지폐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작동시키는 바람에 620만원을 교환한 경우, 세탁기 밑에 현금으로 보관하던 자녀 결혼자금이 1264만원을 교환한 경우 등이 있다. 창고에 보관하던 돈이 습기 따위에 부패해 1억1780만원을 교환한 사례도 있었다.

돈이 불에 탔을 땐 붙어 있는 재 부분까지 남은 면적으로 인정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한은 측은 “불에 탄 상태 그대로의 모습이 최대한 유지될 수 있도록 재를 털어 내거나 쓸어내지 말고 상자나 용기에 담아 운반해야 한다”며 “금고나 지갑 등에 보관한 은행권이 불에 탔을 땐 보관용기 상태로 운반해 달라”고 당부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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