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신국립극장과 도쿄문화회관이 ‘오페라 여름의 제전 2019~2020’의 첫 작품으로 제작한 ‘투란도트’. Masahiko Terashi-신국립극장

지난 18일 도쿄 신국립극장 오페라하우스. 2020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일본 신국립극장과 도쿄문화회관이 공동제작하는 ‘오페라 여름의 제전 2019~2020’의 첫 작품으로 ‘투란도트’가 무대에 올랐다.

도쿄를 대표하는 두 극장인 신국립극장과 도쿄문화회관은 2년에 걸쳐 자코모 푸치니(1858~1924)의 ‘투란도트’와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의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를 제작해 일본과 해외에서 공연한다. 올해 ‘투란도트’는 신국립극장 오페라 부문 예술감독인 오노 가즈시가 지휘를 맡고, 스페인의 공연그룹 ‘라 푸라 델스 바우스’ 소속 연출가 알렉스 올리에가 연출을 맡았다.

1926년 이탈리아 밀라노 스칼라극장에서 초연된 ‘투란도트’는 고대 중국을 배경으로 한 3막 오페라. 선대의 공주가 외세의 침입으로 능욕당한 것을 잊지 못하는 투란도트 공주가 주인공이다. 남자를 증오하는 투란도트는 구혼하러 온 왕자들에게 3개의 수수께끼를 낸다. 왕자들은 수수께끼를 모두 맞추지 못하면 결혼은커녕 목이 잘린다.

일본 신국립극장과 도쿄문화회관이 ‘오페라 여름의 제전 2019~2020’의 첫 작품으로 제작한 ‘투란도트’. Masahiko Terashi-신국립극장

왕국을 잃고 떠돌던 타타르의 왕자 칼라프가 3개의 수수께끼를 모두 푸는데 성공한다. 투란도트는 황제에게 결혼을 철회해달라고 부탁하지만 거절당한다. 그러자 이방인인 칼라프가 투란도트에게 거꾸로 제안한다. 새벽까지 자신의 이름을 맞추면 목숨을 내놓겠다는 것이다.

투란도트는 신하들에게 칼라프의 이름을 알아오도록 명령하고, 신하들은 칼라프와 같이 있던 두 사람을 붙잡아온다. 바로 칼라프의 아버지 티무르와 칼라프를 짝사랑하는 노예 류다. 류는 고문에도 불구하고 칼라프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채 자결한다. 류의 죽음에 감동받은 사람들이 티무르와 함께 류의 시신을 들고 나간 뒤 칼라프가 투란도트를 껴안고 입을 맞춘다. 칼라프는 투란도트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자신의 이름을 밝힌다. 이때 심판의 시간이 되어 황제와 사람들이 등장하자 투란도트는 “그의 이름을 알아냈다. 그의 이름은 사랑”이라고 외친다. 두 사람을 축복하는 합창으로 막이 내린다.

‘투란도트’는 오랫동안 슬럼프에 빠져있던 푸치니가 의욕적으로 새로운 음악 형식에 도전한 작품이다. 하지만 푸치니는 후두암 수술 후유증으로 3막의 류의 죽음 장면까지 작곡한 뒤 세상을 뜨고 말았다. 이후 푸치니와 절친했던 지휘자 토스카니니의 감독 아래 푸치니의 스케치를 토대로 작곡가 프랑코 알파노가 미완 부분을 완성했다.

'투란도트'의 지휘를 맡은 신국립극장 오페라 부문 예술감독인 오노 가즈시(왼쪽)과 연출을 맡은 스페인의 공연그룹 ‘라 푸라 델스 바우스’ 소속 연출가 알렉스 올리에. 신국립극장

알파노가 작곡한 377마디를 토스카니니가 268마디로 압축한 버전이 정착됐지만 간간히 알파노의 최초 버전, 류의 죽음으로 끝난 푸치니의 원래 버전, 2002년 이탈리아 현대음악 작곡가 루치아노 베리오가 결말을 다시 작곡한 버전도 공연되기도 한다. 2008년 중국에서는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하오 웨이야가 새롭게 작곡한 버전이 나오기도 했다. 하오 웨이야 버전의 경우 중국 전통민요 ‘모리화’를 피날레에 배치해 중국적 느낌을 물씬 풍긴다.

신국립극장이 선보인 ‘투란도트’는 음악적으로 친숙한 알파노 버전을 선택했다. 프랑스 리용 오페라극장 수석지휘자, 벨기에 왕립 모네극장 음악감독 등을 역임한 오노는 현재 자신이 음악감독을 맡고 있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투란도트’의 드라마틱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투란도트 역의 이레네 테오린, 칼라프 역의 테오도르 일린카이, 류 역의 나카무라 에리 등 출연진의 열연도 빛났다.

하지만 이번 ‘투란도트’ 프로덕션에서 가장 돋보였던 것은 올리에의 연출이었다. 올리에는 1992 바르셀로나올림픽의 개·폐막식 연출로도 유명한 라 푸라 델스 바우스의 핵심 예술가 6명 가운데 한 명이다. 올리에가 만든 무대는 마치 영화 ‘블레이드 러너’ 등 SF영화 속 도시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구조물이다. 이 구조물에는 깊은 심연으로 이어지는 듯한 수많은 계단이 달려있다. 그리고 구조물 한면에는 그동안 사형당한 왕자들의 목이 30개 정도 걸려 있다.

일본 신국립극장과 도쿄문화회관이 ‘오페라 여름의 제전 2019~2020’의 첫 작품으로 제작한 ‘투란도트’. 기존의 해피엔딩과 달리 투란도트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결말이다. Masahiko Terashi-신국립극장

무대 중앙에는 마치 우주선의 바닥처럼 보이는 거대한 물체가 떠있는데, 황제와 투란도트가 사는 궁궐을 상징한다. 1막에선 허공에 떠있지만 점차 아래로 내려와 3막에선 바닥에 닿는다. 투란도트 등 궁궐 사람들이 중국풍 의상에서 모티브를 딴 흰 옷을 입은데 비해 백성들은 인종이나 국가를 알기 어려운 디자인과 어두운 색채의 옷을 입고 있다. 그리고 군사들은 마치 로봇 같은 모습이다. 전체적으로 무채색의 무대에서 빨간 옷을 입은 류가 눈에 띄는데, 극중에서 유일하게 사랑을 베푸는 존재라는 것을 드러낸다.

연출가가 원작의 배경을 바꾸거나 새롭게 해석하는 레지테아터(Regie-theatre)가 대세인 요즘 ‘투란도트’는 기존의 중국풍 해피엔딩 사랑 이야기를 벗어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올리에는 이번 작품을 통해 권력의 잔인함, 뿌리깊은 트라우마, 사랑의 고통 등을 보여준다. 특히 기존의 해피엔딩 대신 투란도트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결말을 보여줬다. 이번 작품에서 류의 자결에 충격받은 투란도트는 3막 결말 부분에서 류의 시신을 쓰다듬으며 안타까움을 드러낸다. 그리고 심판의 시간에 “그의 이름은 사랑”이라고 말한 뒤 자신의 목을 칼로 긋는다. 칼라프의 구애를 거부한 것이다.

사실 ‘투란도트’는 그동안 류의 죽음이 너무나 허망할 뿐만 아니라 공주의 갑작스런 변심이 억지스럽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칼라프야 투란도트의 권력과 미모에 끌렸겠지만 투란도트가 칼라프를 그렇게 쉽게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다. 성폭력에 가까운 칼라프의 강제 키스는 오히려 투란도트의 트라우마를 악화시켰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있다. 이 때문에 1999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리세우 극장에서 여성 연출가 누리아 에스페르트가 연출한 ‘투란도트’에서 투란도트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결말을 택한 이후 여러 연출가들이 투란도트의 죽음으로 끝내고 있다. 최근에는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강제 키스를 당한 투란도트가 “그의 이름은 칼라프”라고 밝히며 칼라프를 사형시키는 결말이 나오기도 했다.

일본 신국립극장 전경. 신국립극장

‘오페라 여름의 제전 2019~2020’을 이끄는 오노는 “‘투란도트’는 음악적으로 푸치니의 실험성이 돋보이기도 하지만 권력, 살육, 폭력, 트라우마 등 인류의 이야기를 담기에 적합한 작품이라고 본다”면서 “투란도트의 죽음으로 끝나는 이번 작품의 결말에 대해 찬반 논란이 있다. 하지만 인간이 살아있는 것을 재확인하는 장소가 극장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관객들을 가슴 떨리게 만들거나, 화나게 만들거나, 토론하게 만들거나 하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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