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수출규제를 계기로 정부가 부품·소재 국산화에 시동을 걸고 있다. 매년 1조원 넘는 예산 투입도 공언했다. 다만 부품·소재 국산화 혹은 경쟁력 강화는 어제오늘 시작한 일이 아니다. 이미 1991년부터 부품·소재 분야의 높은 ‘일본 의존도’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정책을 펼쳐왔다. 그런데도 한국의 부품·소재산업 경쟁력은 ‘제자리 걸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술 연구·개발(R&D)→설비투자→제품 양산·납품’이라는 밸류체인(가치 사슬)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가치사슬부터 구축해야 ‘부품·소재산업의 독립’이 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2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정부 차원에서 부품·소재의 국산화에 대한 종합 대책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반이다. 정부는 1991년 건설중장비, 공작기계, 섬유기계, 냉동공조 기계, 사출성형기계, 반도체 장비 등 6개 핵심 자본재의 국산화율을 높이기 위한 5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1999년에는 기계류 부품·소재 국산화 대상 품목으로 질소가스 증압기 등 565개 품목을 고시하고 기술지원에 박차를 가히기도 했다.

2001년에는 금융·세제 지원 등을 통해 부품·소재산업을 육성하는 ‘부품·소재 전문기업 등의 육성에 관한 특별법(부품·소재 특별법)’이 시행됐다. 당시 정부는 10년간 1조4000억원을 기술 개발에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대일 무역적자가 축소되지 않자 2010년에는 세계 4대 소재 강국 진입을 목표로 8년간 민관 합동으로 11조원을 투자하는 ‘10대 핵심소재 국산화 프로젝트’를 가동하기도 했다.

정부의 여러 정책들은 예산 문제로 일부 지원 규모가 축소되기도 했지만, 자동차·디스플레이 분야에서 부품·소재 국산화 성과를 거뒀다. 2001년 1억7000만 달러나 적자였던 부품·소재 무역수지는 지난해 1358억 달러 흑자로 전환됐다.

그러나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주력 수출품의 핵심 부품·소재는 여전히 일본 의존도가 높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를 내린 3개 핵심소재 중 플루오드 폴리이미드는 전체 공급물량 가운데 93.7%가 일본산이다. 포토 리지스트는 91.9%가 일본에서 수입된다.

산업부 관계자는 “모든 부품·소재를 100% 국산으로 채우는 나라는 없다”며 “아무리 부품·소재 국산화를 추진한다고 해도 경제성이나 기술적 한계 때문에 개발 자체가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기술력 차이와 생산설비 투자비용 때문에 일본산 수입이 더 경제적이었다는 의미다. 이제는 일본의 경제보복을 계기로 일부 부품·소재의 전략적 육성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또한 정부의 예산 지원이 R&D에만 집중되다 보니 실질적인 벨류체인을 형성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연구원은 “정부의 R&D 예산은 어느 한 분야에만 집중적으로 지원하기 어렵다. 자동차,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여러 분야에 두루 지원해야 하다 보니 R&D 지원만으로는 특정 분야에서의 부품·소재 개발에 성과를 내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산업계에서는 “오랜 기간 일본산에 의존하다 보니 국내에서 관련 부품·소재가 개발되더라도 일본 거래처와의 관계나 국산 제품 신뢰도를 무시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소기업이 새로운 부품·소재를 개발해도 대기업에 납품되지 않으면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고 기술이 사장되기 쉬운 구조인 것이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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