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방향으로) 노형준, 송하나, 김지윤씨

일본 경제보복으로 촉발된 한일갈등이 독도로까지 불똥이 튀면서 연일 가열되는 상황이다. 양국 사이 대화는 끊겨 있고 길은 보이지 않는다. 대체 일본은 왜 그럴까. 걱정과 함께 궁금증도 커지는 상황이다. 해법은 아는 것에서 시작하는 게 마땅하다. 일본 정부나 미디어를 통해 재해석되지 않은 진짜 일본인의 속내. 그들의 생각은 무엇일까. 두 명의 청년 기자가 가벼운 백팩을 메고 일본에 갔다. 국민일보는 일본에 터를 잡은 한국인부터 한국을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혹은 무관심한 일본인들을 두루 만나 일본에 대해, 또 그들이 생각하는 한국에 대해 듣고 ‘백팩리포트’를 연재한다.

일본 관광업계에 종사하는 20~30대 한국인 3명을 지난 22일 일본에서 만났다. 짧게는 7년, 길게는 13년째 일본에서 생계를 꾸려가는 이들이 바라보는 한국과 일본은 색달랐다. 늦은 저녁 도쿄 신주쿠(新宿)의 음식점에서 만나 맥주잔을 기울이며 일본의 경제보복과 잇따른 한국의 반발 등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한일 관계에 대해 가감 없는 대화를 나눴다. 혐한, 일본인, 불매, 관광업계, 일본 정치까지. 한국에서 바라볼 때는 도통 이해되지 않던 일본의 모습이 조금씩 퍼즐을 맞춰 나갔다. 일본 사회에 터를 잡은 한국 청년들과의 대화를 꾸밈없이 담아봤다.

△인물 소개(시계 방향으로)
노형준(33): 호텔 영업직 사원으로 일하고 있다. 11년째 일본 거주 중.
송하나(35): 호텔 프런트에서 일한다. 13년째 일본 거주 중.
김지윤(24): 일본 공항 호텔 프런트에서 근무한다. 7년째 일본 거주 중.

△한국 관광객들 정말 줄었나
형준= 일본 불매 운동으로 한국인 여행객이 확실히 줄었어. 신규 예약 20%가 줄고, 기존 예약도 20%가 취소됐어. 한국 여행사들도 이미지 신경 쓰느라 일본 상품이 인터넷에 노출되지 않게 배너를 없앴어. 내가 일하는 호텔 후쿠오카 지점은 지금 한국인 관광객이 지난해 대비 15%가 줄었대. 요금을 낮추자는 움직임도 있고. 업계에서는 불매 운동을 장기전으로 봐. 일본 여행 문의 자체가 줄었거든. 그래서 나는 다음 달 손님 유치하러 부산에 출장까지 가.
지윤= 공항에서도 요새 한국인 관광객이 잘 안 보이더라. 지난해 이맘때는 확실히 사람이 더 많았어.

△한국서 부는 일본 불매운동에 대해
지윤= 당연히 한국의 불매운동에는 동의해. 불매 통해서 협상에 힘을 실어주는 건 맞다고 생각해. 근데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한국과 일본 양쪽 도소매업자들이 직접 피해를 입겠지. 그분들에 대한 대처 방안은 아직 정해진 게 없어. 장기화되면 일본 정부에서 불매로 피해를 입는 일본 업체에 대한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형준= 우리 호텔은 우선 자체적으로 대응하고 있어. 장기화되면 문제가 심각할 텐데 일본 정부가 나설지는 의문이야. 나만 해도 숨이 턱턱 막혀. 한국에서 오는 손님을 담당하는데 단체 손님이 줄면 내 실적이 줄어드는 거니까. 노(no) 재팬도 충분히 이해해. 근데 일본에서는 정치적인 문제가 있다고 해서 우리한테 “돌아가!”라고 하진 않잖아. 근데 한국에서 일하는 일본 국적 아이돌이 비난받는 걸 보면 안타까워. 일본 야후에 그런 기사가 뜨면 일본 사람들은 “왜 일부러 한국 가서 욕을 먹나. 돌아와라” 그러지. 한국에서 근무하는 일본인 직장인들은 스트레스가 엄청 심할 것 같아. 그래도 나는 한국 정부까지 강경하게 나선 만큼 불매 운동을 확실히 해서 이번만큼은 흐지부지 마무리되지 않았으면 해.
하나= 우리한테 일본은 생활터전이잖아. 다른 사람들은 (여기서 일하고 돈을 버는) 우리를 보고 매국노라고 생각할 수 있을 거야. 그런 걸 생각하면 속상하지. 물론 일본이 우리에겐 삶인지라 불매에 동참하지 못하는 건 미안하다고 생각해.

22일 저녁. 술잔은 하나둘씩 쌓여갔다.

△ 참의원 선거와 대한 수출규제, 일본인 생각은
하나= 21일이 참의원 선거일이었잖아. 그럼 그 다음날 회사 와서 서로 투표했냐고 물을 수 있지. 근데 내 직장 동료는 서른살인데도 지금껏 선거를 해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
지윤= 그래. 나는 괜히 얘기를 꺼냈다가 “정치에 정말 관심이 많은 아이구나”라는 말도 들었어. 선거철만 되면 국회의원이 지하철에 나와서 선거운동을 하는데 다 그냥 지나가. 그건 너무 충격이었어. 아무리 그래도 의원이 직접 연설을 하는데 쳐다도 안보니까.
형준= 정말 자기한테 관련된 것만 신경 써. 그나마 업계 사람들은 이번 일본 수출규제 조치에 대해서 반응은 하더라. 근데 남일로 생각하고 자기 걱정만 하더라고. “그쪽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괜찮나? 손님이 줄어든다는 데 어떡하지?” 이런 식이야.

△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인식은
지윤= 내가 만난 일본인 대부분은 한일 갈등에 대해서도 자기 입장이 없었어. 자기가 살아가는데 역사가 중요하지 않은 거야. 위안부 문제도 “일본 쪽에서 잘못했다고 하고 보상을 했다는데. 근데 왜 문제라고 하는 거야?”라는 의문을 갖더라. 그 배경을 아냐고 물으면 모른대. 그러니까 얘기를 꺼내도 대화가 진전이 안돼.
형준= 나야 여행사와 일하니까 한일 갈등에 관심을 가지는 일본인도 있긴 해. 근데 대부분은 관심이 없더라. 굳이 얘기가 나오면 “정치인들이 원래 그렇지 않냐” 이렇게 말하더라고. 젊은 애들은 ‘정치는 정치고 문화는 문화다’ 이렇게 보기도 하고.

△‘쇼오가 나이(어쩔 수 없지)’로 퉁치는 사회
하나= 일본인들은 정말 “쇼오가 나이(しょうがない)” 한마디로 퉁치지 않아? “어쩔 수 없지” 이러는 거야. 세금을 올린다고 해도 “올리는구나. 쇼오가 나이” 그리고는 “그럼 언제부터 올리는 거야?” 이렇게만 말해.
형준= 도쿄에서만 받던 숙박세도 1~2년 전부터 오사카랑 교토에서도 받고 있잖아. 한국에서 갑자기 관광객들한테 숙박 세금을 받겠다고 하면 “이유를 밝혀라. 왜 갑자기 지금부터냐”고 논란이 됐겠지. 근데 여긴 그냥 “쇼오가 나이. 그렇구나” 하는 거야. 순응하는 정서가 큰 것 같아. 오히려 현장에서 외국인들이 “숙박비 냈는데 숙박세는 뭐냐”고 항의를 하지.


△일본 내 혐한 어느 정도인가
하나= 한일 갈등이 심했던 2007~2008년에는 부동산에 집 보러 다니면 “한국인이니까 나가라” 이런 얘기 들어본 적 있긴 해. 우리는 한국어, 일본어, 영어를 하잖아. 전문성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봐. 그런데 ‘그래봤자 너는 한국인. 나는 일본인’이라는 근본 없는 자신감이 있어 다들. 그걸 또 말로 하지 않고 그냥 그런 생각이 은연중에 드러나.
지윤= 나도 2013년에 와서 살 집을 구하는데 부동산에서 외국인을 안 받더라고. 집주인이 조건으로 내세우면 그게 당연한 거야. 이건 관광객이 아니라 직접 사는 사람들만이 겪는 거지. 정말 깊숙이 이 사회에 침투한 사람들만 느끼는 음침한 차별인 것 같아. 나도 공항에서 여권을 자주 만지잖아. 그러면 일본인 직원들은 ‘여권은 일본 여권이 제일이다’ 이런 말도 안되는 것에서 우월함을 느끼더라고. 적어도 아시아권에서는 가장 우월하다는 생각이 대화에서 사소하게 드러나.

△일본 내 한국인, 안전은
형준= 혹시 한국 분들이 일본에서 일하는 한국인이 피해 입을까 걱정하신다면 괜찮다고 전하고 싶어. 정서가 다르거든. 일본은 직원이 부족해서 외국인 노동자를 많이 써. 한국인을 배척하면 안 돌아가는 회사가 많을 거야. 다른 외국인 노동자도 불안할 거고. 정치적으로 어떤 사안이 있어도 일본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건드릴 수 없어. 일본은 정치적 문제가 벌어졌더라도 사회적으로 개인을 배척하지는 않잖아.
지윤= 맞아. 일본 사람들은 한국 아이돌 되게 좋아해. 정말 유명한 아이돌 아니어도. 지금도 한인타운이 있는 도쿄 신오쿠보(新大久保)에 가면 그 지역에서만 활동하는 한국인 아이돌에 다들 열광해.
하나= 오히려 한국 내 반일 감정을 걱정하는 일본인도 있더라. 10~20대 친구들은 트위터에 “일본인이 한국에 놀러 가도 괜찮나요” 이렇게 묻더라고. 직접 물어보는 사람도 있고.

△한일 갈등은 해결될 수 있을까
형준= 역사 문제에 대한 사과는 전제조건이지. 근데 그 기준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국이 사과의 정도와 형식을 제시해주면 좋겠어.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보상했는데 무슨 사과가 더 필요하다는 건지 납득을 못하는 분위기니까.
지윤= 나라의 대표가 인정하지 않는 사과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 시민 의식은 거기서부터 출발한다고 봐. 일본 시민들이 자기 객관화 없이 그대로 믿고 관심을 갖지 않는 게 국가의 가르침이 그렇기 때문이기도 하니까.

도쿄=박세원 기자 o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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