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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드라마에서 표현된 낙태법의 오해


배정순
(프로라이프여성회 대표, 생명대행진 조직위원)

2019년 4월 11일 낙태법은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으면서 2020년 12월까지 개정안을 만들어야 하는 시한부 법안이 되었다. 그러나 사회적 상황은 녹록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우리 사회가 낙태에 대한 심각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대는 바로 여성차별이라고 하는 차별의 관점이 대부분이다. 현행법상으로 여성과 의료인만을 처벌하는 조항은 여성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여성들은 온갖 차별과 수모를 겪으면서 살아오지 않았는가. 특히 사회의 지도층에 입성한 여성이라면, 전부는 아닐지라도 상당수 그들의 삶은 그야말로 투쟁과 저항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낙태법은 여성을 차별하기 위한 법이 아니다.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며,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여성의 기본권을 일부 제한한 것이다.

왜냐하면, 생명을 죽인 살인죄는 무기징역형이나 사형까지도 처할 수 있다. 그러나 영아를 살해하면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고 거기에 비하면 낙태죄는 훨씬 낮은 1년 이하의 형벌 혹은 200만원 이하의 벌금형 중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태아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생명과 성인의 생명을 차별한 것이지만 우리사회의 법은 그렇게 규정하고 있다. 물론 낙태가 죄가 아닌 경우와 비교한다면 제한이 되는 것이겠지만, 생명권을 박탈한 경우를 고려해본다면 아마 수긍일 갈 수 있을 것이다.

TV 드라마 ‘보좌관’의 최종회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한 여성 국회의원이 두 남성 국회의원에게 생방송 시간 곤란을 당하는 장면이다. 그 이유는 한 미혼모의 낙태를 도와주었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낙태를 왜 도왔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산모의 생명이 위험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행법상의 낙태죄가 존치하고 있는 경우에도 산모의 건강이 위험할 경우는 낙태가 이미 가능하도록 모자보건법에 허용조항을 두고 있다. 배우자,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위급한 경우 본인의 동의로도 낙태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생명에 위험한 미혼모의 낙태를 도운 것이 정치적 협박이 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드라마에서는 왜 이런 낙태법에 대한 말이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가. 그것도 입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의 대사라고 하기에는 너무 부끄러운 수준이 아닐 수 없다. 산모의 생명이 위험해서 낙태했다는데 그것을 도와준 것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그것을 도운 여성의원은 아주 곤란하게 생각하며 숨기려고 하는 부분도 이해되지 않으며 두 남성의원은 그 사실을 가지고 여성의원을 궁지에 몰아넣고 미소를 짓기까지 한다.

현행법상으로 합법적인 낙태를 했고 산모의 생명이 위험한데 도와주었다면 오히려 칭찬을 받을 일이지 협박을 당할 일은 결코 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왜 연출이 되었는지 궁금하다. 이후 여성의원의 답변을 보면 그 의도를 알 수 있다. 낙태는 법으로 막는다고 해서 막을 수 없으므로 국가가 이를 법으로 막는 것은 폭력이기 때문에 전면 허용해야 한다는 말을 한다. 낙태의 불합리성을 이야기해서 낙태 합법화 내지는 일부 합법화를 지지하는 모양새다.

더욱이 생명이 위험한 산모의 낙태를 도왔다는 사실을 알고 테러 공격까지 받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졌다. 낙태를 반대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모성보호를 위해 낙태를 반대하는데 모성이 위험해서 낙태했다는데 거기에 테러를 할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사례는 24주까지 낙태 전문시술소에서 낙태를 할 수 있고 주에 따라서는 태어나기 직전까지도 낙태가 가능하며 대선후보자가 낙태 적극 찬성한다고 말할 수 있는 미국에서나 한두 번 있을 법한 일이다.

이런 것을 마치 한국적 상황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연출한 것은 낙태법에 대한 오해를 통해 국민적 여론을 선동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의도하였든 그렇지 않든 간에 말이다. 몰랐다면 정정해야 하고 알고도 그랬다면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낙태를 왜 반대하는가. 낙태가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존재한다면 낙태는 보이지 않는 강요에 의한 것이며, 낙태야말로 여성에게 가장 치명적이고 차별적인 폭력이 아니던가.

이미 많은 의학저널이 쓰고 있는 여성의 사회적 육체적 정신적 트라우마를 보더라도 낙태 자체는 외상임이 분명하다. 낙태의 선택이 폭력이고 낙태의 후유증이 존재한다면, 어떻게 마냥 낙태 합법화를 주장할 수 있을 것인가.

적어도 여성과 태아를 보호하고자 한다면, 이런 보이지 않는, 강요된 선택으로의 낙태를 줄이거나 예방하자고 해야 할 것이 아닌가.

낙태에 대한 악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오해와 왜곡을 낳는 이런 상황들은 우리나라 낙태법 개정안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드라마는 스토리, 인물, 배경 무엇이든 허구일 수 있고 그것이 허용될 것이다. 그러나 당장 낙태법 개정안을 앞둔 한국의 상황에서 국회의원으로 등장한 이들이 현행 낙태법도 모른 채, 허위사실들로 갈등구조가 만들어지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주요 선진국은 이미 70~80년대에 낙태법이 개정되었다. 그러나 한국은 2019년 낙태법 개정에 들어섰다. 적어도 2019년도의 낙태법 개정안이 수십 년 전 선진국이 내세웠던 과거의 낡은 잣대가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2019년 대한민국의 낙태법 개정안은 낙태에 대한 여성의 정신적, 육체적 외상과 사회적 구조적인 병리를 팩트로, 태아 생명의 과학을 기본으로 해야 할 것이다.

24주, 혹은 태어나기 직전까지도 낙태가 가능한 미국은 2013년도부터 태아의 심장박동이 감지되는 시점, 즉 임신 6주를 기점으로 낙태를 금지하는 법안(heart beat bill)이 여러 주에서 채택되었고 더 많은 주에서 논의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미국이 보여주는 낙태법의 변화는 낙태법 개정안의 방향성을 잡는 기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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