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일본 도쿄 시부야역 일대에서 세계 곳곳의 여행객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한국인 관광객도 많이 볼 수 있었다.

23일 저녁 일본 도쿄 신주쿠 번화가의 한 유명 카페에는 사람들이 북적댔다. 카페 안에는 한국인 관광객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직장인 고모(27)씨와 후배인 대학생 이모(23)씨도 그중 하나였다.

두 사람은 각각 휴가와 방학을 앞두고 지난 5월 일본 여행을 계획했다. 당시만 해도 여행 생각으로 들떴지만, 정작 일본에 와선 조심스러운 마음이 컸다. 이씨는 “정세가 안 좋고, 한국에선 반일운동도 하는데 ‘지금 일본에 가는 게 좋은 선택인가’ 고민했다”고 말했다. 고씨는 “일본 여행을 취소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취소하면 준비한 시간이랑 비용 같은 게 사라지게 되니까 그런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여행을 온전히 즐기지 못한다고도 했다. 이씨는 “계획 짤 때만 해도 일본에 가면 전통옷 같은 것도 입어봐야겠다 생각했는데 이 시국에 차마 그런 건 못하겠다”며 “사진도 많이 안 찍었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생각도 없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강화로 한국에선 일본 제품불매·여행자제 운동이 확산하는 등 반일감정이 거세지고 있다. 일본 내에서도 관광객 급감 우려가 나온다. 다만 일본 도쿄에선 아직까진 한국 여행객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한·일 관계 악화 전에 미리 여름휴가 계획을 잡아두거나 비용 부담으로 여행을 취소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즐거운 여행을 계획했던 때와 달리 막상 일본에 와서는 마음이 계속 불편하다고 한다. 한·일 관계가 악화된 시기에 일본에 왔다는 미안함, 주변의 시선 걱정 때문이었다. “매국노가 된 것 같은 기분”이라고 토로한 이도 있었다.

23일 일본 도쿄 신주쿠에 위치한 블루보틀 카페.

대학생 정모(22)씨도 찝찝한 마음으로 지난 22일 일본에 왔다. 2달 전 방학을 앞두고 계획한 나홀로 여행이었다. 정씨는 “예전에 오사카에 온 기억이 좋아서 이번엔 도쿄로 왔다”며 “비행기표 예매할 때만 해도 한·일 관계가 나쁘지 않았는데 이렇게 돼서 ‘여기 와도 되나?’ 생각했다”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정씨는 예매 취소도 고려했다. 하지만 “보통 제 나이대 학생한테는 취소하는 비용이 너무 커서 차마 못했다”고 말했다. 여행 소식도 친한 지인 극소수에게만 알렸다. 그는 “조심스럽다”며 “지인들 기념품도 사가는 편인데 이번에는 일본제품을 받는 사람이 안 좋게 생각할까 봐 사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30대 직장인 김지영(가명)씨는 지난 22일 도쿄 긴자의 한 숙소에서 막 편의점에서 사온 도시락으로 저녁을 때웠다. 김씨는 한국 K-POP 공연을 보기 위해 이틀 전 일본에 왔다. 그는 “바깥 시선이 걱정되고 신경 쓰여서 콘서트 일정 외에는 숙소에만 있었다”며 “오늘도 편의점 갈 때 처음 바깥에 나갔다”고 말했다.

김씨는 일본에 오기 전 가족과 지인들에게서 ‘시국이 이런 상황인데 왜 일본에 가느냐’는 말을 들었다. 그는 “몇 달 전 예약했고 현지팬들과 약속도 있어서 취소할 수 없었다”면서도 “마음의 부담이 컸다. 속된 말로 ‘매국노’가 된 기분이었다”고 하소연했다.

여행은 하되 일본 제품은 사지 않는 움직임도 엿보인다. 일본 도쿄의 한 화장품 매장에서 일하는 한국인 유학생 김모씨는 “한국 사람들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것은 못 느끼겠다”면서도 “와도 물건은 잘 안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 매장은 한국인 아니면 중국인만 물건을 사는 편인데 선호하는 제품이 다르다”며 “최근 들어 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제품의 판매량이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백팩리포트=국민일보 1~3년차 청년 기자들이 백팩을 둘러메고 세계 곳곳 이슈의 현장을 찾아간다. 젊은 기자들은 갈등의 현장에서 현지인들을 만나 그들의 생각을 듣고, 문제를 풀어낼 실마리를 찾으려 한다. 뚜렷한 해법은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이 깊어지고, 고민을 나누는 계기가 될 것이다.

도쿄=글·사진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