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경험하지도 않았는데, 얼마나 눈물을 흘리고 사죄해야 해?’
“대부분의 일본인은 이렇게 생각한다”

도쿄 신주쿠(新宿)역 앞에 서 있는 김경묵 교수


일본 경제보복으로 촉발된 한·일 갈등이 독도로까지 불똥이 튀면서 연일 가열되는 상황이다. 양국 사이 대화는 끊겨 있고 길은 보이지 않는다. 대체 일본은 왜 그럴까. 걱정과 함께 궁금증도 커지는 상황이다. 해법은 아는 것에서 시작하는 게 마땅하다. 일본 정부나 미디어를 통해 재해석되지 않은 진짜 일본인의 속내. 그들의 생각은 무엇일까. 두 명의 청년 기자가 가벼운 백팩을 메고 일본에 갔다. 국민일보는 일본에 터를 잡은 한국인부터 한국을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혹은 무관심한 일본인들을 두루 만나 일본에 대해, 또 그들이 생각하는 한국에 대해 듣고 ‘백팩리포트’를 연재한다.

김경묵 와세다대학교(早稲田大学) 문학학술원 문학구상학부(文学学術院 文学構想学部) 교수는 15년째 일본에서 교수 생활을 하고 있다. 시민운동과 인권을 연구했고, 문화 연구도 이어가고 있다. 김 교수를 24일 오후 일본 도쿄 신주쿠(新宿)의 한 펍에서 만났다. 일본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목소리는 어디에서 나오는지, 한국은 역사를 모르는 일본인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들어봤다.

-일본 시민사회의 반응은?
“시민사회가 어떤 사람을 말하는지부터 어려운 문제다. 일본에서는 아베를 비난하는 ‘양심적’인 시민 단체가 있다. 식민지 지배에 대해 자성적으로 반성하며 속죄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분들은 고령화돼 사회적 입지가 줄어들고 있다. 아베가 아직도 지지받고 있고 사민당이 자리를 얻지 못했다는 건 이런 양심적인 시민 사회의 몰락과 쇠퇴라고 볼 수 있다. 양심적 단체와 반대로 ‘일본회의’라는 보수 세력이 있다. 일본 내에선 일본회의가 10~15년 동안 ‘풀뿌리 보수운동’을 이어가면서 그 운동의 성과가 자민당 아베 정권으로 가시화됐고, 열매를 맺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극우 단체가 영향력이 큰 셈인데, 이들의 극단적인 사상을 비판하며 일본회의는 시민사회로 볼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교수로서 일본 학생을 보면 어떤가
“요새 ‘동북아시아의 화해’라는 강의를 하고 있다. 와세다대 학생들이 쓴 글을 보면 일본 담론과 완전히 다르다. 학생들은 서로 화해해야 하고, 이해해야 하고, 정치적 갈등과 사람 간 문화 교류는 차별화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나는 학생들에게 묻는다. ‘너희들의 주장은 일본 사회에 넘쳐나는 반한 담론과는 거리가 있다. 너희들의 생각은 왜 다른가’라고. 여기서 더 나아가서 질문 하나를 더 던져봤다. ‘그럼 거꾸로, 일본 담론에서 소개되는 한국 사람들의 생각(반일 감정)이 있다. 그럼 한국 대학생들도 다 저렇게 생각할까? 그렇지는 않겠지’라고.
즉 일본에서 일본 정부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듯 한국에서도 분명 한국 정부와는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이 있을 거다. 일본 정부를 전적으로 지지하는 한국인이 숨어있단 뜻이 아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도 정치나 사상을 떠나서 불매 운동은 지지하지만 (피해 입을) 소시민도 걱정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사람의 목소리가 반영될 공간이 지금 한국에는 별로 없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게 내 고민이고 우리 학생들의 고민이다.”


-한·일 갈등의 ‘바른 해결’
“우리가 베트남에 저지른 역사에 대해 잘 모르고 제대로 배우지 않듯,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은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배울 기회가 없어서 무지하고 무식한 거다. 한·일 역사에 있어 한국은 피해자이기에 피해자로서의 역사는 누구나 잊을 수 없는 공공의 역사다. 모르는 건 탓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공감과 이해를 얻을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우리는 잘 지내고 싶은데,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얼마나 눈물을 흘리고 사죄해야 해? 연기를 하라면 할 수 있는데 정말로 연기를 하라는 거야?’라고 생각한다. 결국 새로운 교육이나 정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일본 초중고는 역사 공부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니 대학의 몫이자 교수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과 일본이 편견을 거두려면
“이번 싸움에서 누가 이기든 두 나라는 물리적으로 떼놓을 수 없다. 한·일 정부 간 어떤 갈등이 일어나더라도 시민들의 관계까지 악화되진 않았으면 한다. 두 나라의 관계 악화를 최소화할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인이 편견을 거두고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하게 두 가지가 있다. 1. 공통의 적이 외부에 있을 때, 2. 갈등을 망각할 수 있을 때다. 두 나라가 협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슈(환경 이슈 등)가 있다면 관심이 그쪽으로 갈 테다. 요새 농담 삼아 하는 말이 있다. ‘욘사마 어디 갔어?’라고. 한·일이 갈등을 망각하려면 욘사마 정도는 돼야 하지 않나. 오해하면 안 되는 게 문화가 탄탄하더라도 정치가 악화되면 관계는 흔들리기 마련이다. 아무리 그래도 (현재 일본 내에서 인기 있는) 방탄소년단과 트와이스에 과도하게 기대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일본 경제 보복 조치, 왜
“한국 내에서 이번 수출 규제를 강제 징용 배상 판결의 보복이라고만 다루는데, 판문점 회담에 대한 불쾌함도 있지 않았나. G20 정상회의 후 판문점 회동에서 일본이 쏙 빠졌다. 한국에서는 ‘멍석은 아베가 깔아놓고 실익은 한반도가 얻었다’는, 마치 한·일 축구전을 이긴 것 같은 쾌감이 있었다. 일본 내 일반인들은 무감각해도 일본 정부는 굉장히 불쾌하다고 느꼈을 거다. 판문점 회담이 아니꼬워서 괘씸죄로 한마디 했는데, 한국 반응이 커져서 빼도 박도 못하는 관계가 된 걸지도 모른다.
일본 내부에서 아베의 조치가 잘못됐다고 보는 시각은 분명 있다. 합리적인 이유는 없었다고 보인다. 장사를 안 하겠다는 건 스스로의 목을 조이는 것 아닌가. 그래서 괘씸죄로 읽힌다.”

-불매운동에 대해
“불매가 몇 년이 갈지, 몇 개월이 갈지는 모르겠다. 일본에서 나이 있는 분들은 불매운동을 불쾌하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또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한다. 몇 년을 지속하겠다는 단호한 각오가 있으면 몰라도 결국 식어버릴 가능성이 있다. 신중해야 한다. 오히려 한국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이 나중에 우려먹는 소재가 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은 정말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구조로 돼 있다. 일제를 파는 사람은 굶어죽어도 된다는 논리가 괜찮은가.”

-한국도 원하고 일본도 원하는 갈등?
“정치적으로 얘기하자면 나라에서는 외부의 적이 있으면 좋다. 한국 정치에서 볼 때 외부의 적을 만들어야 한다면 일본을 적으로 삼는 게 만만하다. 일본도 북한을 들먹이며 한반도 리스크를 찾는 게 쉽다. 그래서 당분간 한·일 관계는 안 좋을 거라고 본다. 그럼에도 남북 관계가 더 크게 움직이면 일본과의 갈등은 시간이 해결하지 않을까.
일본에서 8월은 평화의 달이다. 8월 6일과 9일은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가 있었던 날이고 8월 중순은 추석이다. 8월엔 일본 언론이 다뤄야 할 기획 이슈가 있다. 반면 한국에서 8월은 반일의 달이다. 둘 중 어느 쪽이 이슈를 끌고 가면서 기싸움에서 이기느냐에 따라 이 판도가 얼마만큼 지속될지 보일 것이다.”

도쿄=글·사진 박세원 기자 o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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