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상 에세이] 흑곰 인쇄소의 바젤

어쩌자고 종교개혁지 탐방 (26)

▲ 유명한 바젤 대학의 일부. 캠퍼스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근처의 건물들이 모여서 대학지구를 이룬다.

곳곳에 뭔가 사연 있어 보이는 건물들이 가득한 도시. 오랜 역사를 자랑하듯이 건물에 중세 연도를 표기한 역사적인 도시. 현대적인 도로포장을 했지만 군데군데 과거의 정감있는 포장도로를 남겨두고 관광객의 동선을 표시해주는 도시. 드디어 우리는 ‘바젤’에 왔다. 우선, 알프스 관광 코스는 물론이고 웬만한 종교개혁지 탐방 코스에서도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든 바젤을 우리는 왜 골랐으며 왜 가봐야 하는지부터 해결하자.

▶토막 상식 ◀
바젤은 스위스 종교개혁의 핵심 도시 중 하나다. 굳이 목록을 만들자면, 취리히, 제네바, 베른과 함께 나란히 섰던 도시였다. 초기 종교개혁의 불씨가 취리히로부터 스위스의 각 도시에 옮겨붙었을 때, 스위스 의회는 이 문제를 적당히 억누르기 위해 공개토론회를 열었다. 이를 ‘바덴 회의’라고 부른다.

모든 면에서 로마 가톨릭 측에 유리한 조건을 만든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던 그 회의는 승패가 예정된 게임이었다. 거기 참석한 종교개혁자들을 로마 가톨릭 측은 “거지 같은 오합지졸”이라 부르며 멸시했지만, 회의를 지켜보던 솔직한 사람들로부터 정작 거만하고 무례하며 억지를 쓴다는 평가를 받은 사람은 로마 가톨릭 대표자들이었다. 그들은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최대한 살려서 종교개혁자들을 시종일관 억눌렀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서도 바젤 대표로 나온 외콜람파디우스(oecolampadius)는 천재적인 논증으로 맞섰다. 로마 가톨릭 대표 중 하나였던 사람은 외콜람파디우스를 보면서 “이 창백한 사람이 우리 편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로마 가톨릭은 승리를 자축했지만, 이 과정을 지켜본 많은 사람은 개혁파의 생각이 참되다는 것을 진실로 믿게 되었다. 종교개혁의 불길에 기름을 부은 셈이 되었다. 덕분에 그동안 눈치를 보고 망설이던 도시들이 오히려 종교개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대표적인 도시가 베른과 바젤이었다. 베른은 스위스에서 가장 덩치가 큰 주였고, 바젤은 스위스에서 가장 돈이 많고 학식이 풍부한 도시였다.

사실 종교개혁사에서 바젤이 한 역할은 더 있었다. 루터, 츠빙글리, 칼뱅 등 쟁쟁한 종교개혁자들에게 정신적, 학문적으로 엄청난 영향을 끼친 선배가 있는데 바로 “에라스무스”라는 거장이었다. 그가 바젤에서 살면서 학문을 발전시켜 종교개혁의 토양을 마련했던 것이다. 물론 그 자신은 종교개혁이 기존 질서를 너무 많이 무너뜨린다고 봐서 발을 뺐지만, 그의 사상과 학문적 방법론은 종교개혁자들이 자라나는 자양분이 되었던 것이다. 외콜람파디우스도 물론 그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또한 바젤에 ‘돈’과 ‘학문’이 풍성했다는 말은, 그곳이 서적과 출판의 중심지라는 말도 된다. 사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바젤을 탐방지역에 포함시켰다. 이곳은 토마스 플래터라는 출판인이 활동했던 곳이다.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는 바젤 시내를 좀 돌아다녀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그의 이름이 거리 곳곳에 지금도 무수히 붙어있으니 말이다! 어떻게 된 일일까?


이것은 토마스 플래터 탐방루트를 알리는, 시에서 설치한 안내판이다. 바젤에는 전 세계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에게 도시를 알리기 위해 바젤 출신의 유명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총 네 코스의 도보 탐방로가 마련되어 있다. 즉, 출판인 토마스 플래터는 바젤 역사상 유명한 사람 넷 중에 들어가는 엄청난 인물인 셈이다. 그리고 바로 이 사람이 운영하는 인쇄소에서, 칼뱅이 ‘기독교강요’를 찍어낸다!

자, 이쯤 되면 바젤 소개는 된 줄로 안다. 그렇다면 이제 구체적인 동선을 정해보자. 우선 칼뱅의 기독교강요를 찍었다는 바로 그 인쇄소를 찾아가 보자. 그게 아직까지 남아있느냐고? 500년쯤이야. 이게 바로 유럽여행의 맛이다. 당시 주소를 찾아가 보면 딱 그 골목 그 자리에 건물이 있고, 비록 주인은 바뀌었지만 심지어 아직도 인쇄소이다. 주소는 Petersgasse 34이다.



바젤은 라인강변에 위치하고, 프랑스, 독일과 국경을 인접하고 있어서, 유럽에서도 손에 꼽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우리도 라인강을 경험해보자. 무동력 나룻배를 타볼 수 있다.



강변 양쪽에 줄을 묶어서, 빠르게 흐르는 강물살에 뱃전을 대면, 그 물살이 미는 힘으로 배가 줄을 따라 이동한다. 그야말로 친환경 운행수단이다. 상류라서 물살이 빠르다. 배는 소리 없이 강을 건넌다. 느낌상 3~4분 정도면 건너편에 당도한다. 건너편에서 바라보는 도시는 정말 아름답다.


'중간다리'라는 뜻을 가진 미틀레레 다리가 보이고, 그 뒤로 대성당 첨탑과 지붕이 살짝 보인다. 다시 다리를 건너 저곳까지 걸어가 보자. 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시청사 앞 광장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자. 시청 앞 광장에는 장이 자주 선다. 야채, 청과물, 공예품 등을 주로 팔고 있지만, 길거리 음식도 괜찮다. 광장의 분위기가 대충 이러하다는 것을 보이려고, 시청사 정문에서 뒤로 돌아서서 파노라마를 찍었다.


시청사는 강렬한 색상이 인상적이다. 아래 사진은 그 컬러가 더욱 돋보이게 보정했지만 실제 느낌도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원래 화려한 벽화가 관람 포인트인 곳이다. 실제로 지금도 사용되는 관공서 건물이지만, 입구 쪽 어느 정도는 내부 관람을 할 수 있으니 잠깐 들어가 보자.


조금 더 걸으면 바젤 대성당(종교개혁 이후로는 뮌스터 교회당)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우리는 종교개혁자 외콜람파디우스의 석상을 만날 수 있다.



뮌스터 교회당에서 만난 흑곰. 바젤 시의 문양이 흑곰이다. 그래서 칼뱅의 기독교강요를 인쇄해준 토마스 플래터의 인쇄소 간판도 ‘흑곰’이었다. 여기서 모티브를 얻어서, 필자가 속한 출판사 이름도 "흑곰북스"로 지었다. 존경의 뜻을 가득 담아서 말이다.



뮌스터 교회당 지하에는 에라스무스도 묻혀있고, 외콜람파디우스도 묻혀있다. 생전에 서로 좋아하고 친분을 갖다가, 종교개혁에 대한 견해 차이로 안타깝게도 멀어졌지만, 결국 같은 곳에 묻혔다. 만약 에라스무스가 종교개혁의 부정적인 면을 조금 덜 봤더라면 어땠을까. 소용없는 상상을 해보면서 교회당 뒤편 테라스로 나가면, 탁 트인 라인강 경치가 펼쳐진다. 여기서 쉬면서 하루 일정을 정돈하며 복잡한 머리를 비워보자.



종교개혁지 탐방을 떠나서, 바젤은 그냥 도시 자체가 너무나도 예쁘다. 건물 하나도 그냥 넘겨보기 힘들다. 이것은 저절로 된 일이 아니다. 바젤은 일찍부터 예술과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이 붐처럼 일었던 도시다. 유럽 최초의 시립 미술관을 지어서, 전쟁 때 여차저차 빼앗기거나 분실된 미술품을 시 예산으로 되찾아 전시하고 있을 정도이다. (탐방일정이 촉박하지 않다면 바젤 시립미술관에 꼭 들러보기를 권한다!) 오래된 도시를 예쁘게 가꾸고 사는 사람들의 소박한 멋과 정서가 온 도시에 충만하다.


중세와 근대와 현대의 기가막힌 조화. 특별한 것이 없는 듯하나, 모든 것이 특별한 도시.
종교개혁지 탐방자 외에도, 유럽 여행자 모두에게 강추한다!

황희상 (“특강 종교개혁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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