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익태는 일본 뛰어넘은 ‘극일 인물’…친나치 의혹은 근거없는 허위”

김형석 박사 ‘안익태의 극일 스토리’ 출판 기념회에서 주장


안익태기념재단(이사장 차응선)은 안익태 선생의 친일을 넘은 친 나치 의혹은 허위라며 안익태 선생이야말로 음악적으로 극일, 일본을 정복한 인물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안익태의 극일 스토리’ 출판기념회에서다.

책의 저자이자 본 재단 연구위원장인 김형석 박사는 이날 안익태 선생의 극일 사례로 1960년 일본 관서교향악단과의 순회연주를 들었다. 김 박사는 한국독립운동사를 전공했다.

안익태 선생은 1942년 9월 18일 대형 일장기와 만주국 국기 아래에서 베를린교향악단과 ‘만주국 환상곡’을 초연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8년 후 1960년 그는 일본 관서교향악단과 교토, 오사카, 고베 등지를 순회할 때 ‘한국환상곡’의 4장 ‘애국가’ 부분을 일본인 합창단원들이 한국말로 노래하도록 했다.

또 1965년 4월 10일 동경필하모니교향악단과의 연주도 극일 사례라고 했다. 당시 NHK TV가 안익태 선생에게 정기 공연을 제안하자 그는 교향곡 ‘논개’를 연주 목록에 넣어 달라고 했고 이를 관철했다. 논개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수장을 안고 강물에 뛰어든 논개의 얼을 기리는 곡이다.

김 박사는 “안익태 선생은 이처럼 큰 뜻을 이루기 위해 작은 부끄러움을 감수한, 일제의 우민화 정책을 딛고 일어선 세계적인 음악가”라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또 안익태 선생이 친일을 넘어 친나치라는 이해영 교수의 주장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이 교수가 자신의 저서 ‘안익태 케이스’에서 인용한 ‘호프만 자료’를 입수해 확인한 결과 안익태 선생이 스파이 또는 친 나치라는 내용은 전혀 없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안익태 선생이 입신양명을 위해 나치 독일 ‘제국 음악원’ 회원이 됐고 스파이 총책인 에하라 고이치 집에서 생활비도 안 내고 살았으며 이로 인해 미국에서 입국 금지를 당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김 박사는 이에 대해 당시 제국음악원 회원이 17만 명에 이른다. 회원증은 지휘자 겸 작곡가로 일하는 데 필요한 취업 허가증이었다고 말했다.

또 독일정보망 총책임자로 알려진 에하라 집에 머물렀다는 이유만으로 안익태 선생을 특수 공작원으로 보는 것은 억측이라고 했다. 이와 함께 미국이 안익태 선생을 나치로 간주하고 2년간 입국 금지했다는 주장도, 1946년 1월 3일 미 국방부의 번즈가 바로셀로나 미국 영사관에 보낸 문서에 따르면 허구라는 것이 명확해진다고 강조했다. 문서에는 안익태 선생의 비자 발급에 보안상 반대는 없다고 돼 있다.

안익태 선생은 해방 소식을 듣고 바르셀로나의 미국 영사관에 비자발급 신청을 했다. 미국은 안익태 선생이 한국으로 돌아갈 것을 보증할 수 있는 문건을 요구했다. 하지만 일본 여권을 소지한 데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이어서 ‘국제 미아’ 상태였다. 그래서 안익태 선생은 1950년 한국 여권이 만들어진 후에야 미국 비자를 발급받았다.

김 박사는 안익태 선생이 ‘히틀러 탄생 음악회’에서 지휘했다는 주장에 대해, 해당 음악회인 ‘1944 파리 베토벤 축제’의 전단 어디에서 히틀러 생일이라는 내용이 없다고 했다.


김 박사는 애국가에 대한 오해도 밝혔다. 애국가가 불가리아 민요 ‘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를 표절했다는 주장에 대해 이는 1976년 음악학계에서 사실무근으로 이미 판명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박사는 지난 4개월간 이해영 교수가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자료를 추적, 심층 분석한 결과 그의 책에서 20여 가지 넘는 오류를 발견했다며 안익태의 극일 스토리에 이 내용을 정리했다고 말했다.

책 소개에 앞서 차응선 안익태기념재단 이사장은 환영사에서 “한국사회의 현 위기는 대한민국 정체성에 대한 혼돈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애국가와 작곡가에 대한 근거 없는 시비가 사라지고 통일의 그 날까지 애국가가 불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세균 전 국회의장도 참석해 “모든 국민이 안익태 선생의 이름은 알지만 그의 삶은 잘 모를 것이다”라며 “이런 상황에서 정확한 팩트에 근거한 책이 출간돼 반갑다”고 격려했다.

성악가인 박성원 연대 음대 원로교수는 안익태 선생을 회고했다. “60년도쯤 이대 공연을 마치고 한 호텔에서 만났다. 이런저런 이야기 중에 한국환상곡을 세계 각국에서 연주하며 언제가 가장 감동적이었냐고 묻자 일본에서 일본 사람들 입에서 한국말로 대한사람 만세, 만세, 만세라고 부를 때였다고 했다. 그런 분을 친일파로 모는 것은 문제가 있다.”

3선 의원을 지낸 이영일 헌정동우회 통일위원장은 서평에서 “한국에서 지성인이 그럴만한 이유도 없이 세계적인 음악가를 친일파라는 프레임을 씌운 것도 모자라 나치로 몰아가는 것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이것이 허구라는 것이 책을 통해 객관적으로 증명됐다”며 “애국가는 애국의 심정으로 미국에서 작곡한 것으로 작곡자인 안익태 선생을 존경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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