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비엔날레로 유명한 이탈리아에서도 한 해 열리는 대형 국제 미술제는 하나 정도다. 이탈리아의 3분의 1 국토 면적에 경제 규모도 작은 한국에선 전국 각지에서 비엔날레가 열리는 가운데, 예산 30억원가량의 대형 행사만 서울 광주 부산 세 군데서 열린다. 특히 내년 가을엔 서울·광주·부산 등 3대 비엔날레 모두 외국인이 예술감독을 맡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비엔날레 공화국’인 된 한국에서 외국인미술 기획자 ‘특수(特需)’가 일어나는 모양새가 됐다. 글로벌 미술 파워를 키우기 위한 합리적인 경쟁 체제인가, 지방자치가 낳은 국가 자원의 낭비인가.
문재인 대통령과 오거돈 부산시장이 지난해 9월 부산 사하구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열린 ’2018 부산 비엔날레’ 를 방문해 네덜란드 작가 가브리엘 레스터의 작품 ''조절하기''를 관람하고 있다. 2018.9.14

이 사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전문가들이 의견을 들어봤다. 우선 ‘외국인의 자질 우월론’이 예술감독 선정 과정에 관여한 주최 측이 유하는 공감대였다. 내년에 처음으로 외국인 감독을 뽑은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주관처인 서울시립미술관의 백지숙 관장은 14일 “선정위원회가 연령과 국적을 제한하지 않고 추천을 받은 결과 최종 후보자 3인이 모두 외국인이었다”며 “(한국인 배제를 우려해)한국 큐레이터와의 러닝메이트제가 제안됐으나 자국 이기주의 논란이 일어 추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2016년 부산비엔날레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최태만 국민대 교수는 “부산의 경우는 추천제가 아닌 국제공모를 했다. 냉정하게 보면 외국인 지원자들의 실력이 뛰어난 측면이 있었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한국 감독을 뽑으면 늘 따라다니는 공정성 시비 때문에 주최 측이 외국 감독을 선호하는 경향도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전시기획자 홍경한씨는 “외국에도 우수한 기획자가 없지는 않다. 알게 모르게 작동하는 한국 기획자들에 대한 보수적 관점은 없는지부터 스스로 고찰해야 한다”고 말했다.
'좋은 삶'을 주제로 했던 2018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출품 작품.

최 교수도 “외국의 경험 많고 노력한 미술기획자 영입도 중요하지만, 국내 미술계 발전을 위해서는 토종 양성 차원에서 3대 비엔날레 중 한 군데 정도는 국내 출신에 기회를 줘 경험을 쌓게 하면 좋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한국인 양성론’에 대한 반박도 있었다. 전시기획자 김노암씨는 “한국의 미술시장은 이미 국제무대와 연동돼 활동한 지 오래”라면서 “국적 논의는 술자리 방담으로 그쳐야 할 지엽적인 문제다. 국적이 아닌 개인의 자질, 감독이 어떤 철학을 가지고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주요 비엔날레의 역사가 20년 이상이 되어가는 만큼 과거 예술감독을 맡았던 외국인들이 한국 미술 발전을 위해 어떤 공헌을 했는지 전수 조사를 할 시점은 됐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행사를 주관하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왜 한국인 예술감독을 선호하지 않는지 한국 미술계가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인 감독을 쓰면 매번 되풀이되는 학연·지연 등의 연줄 논란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전시기획자 김성호 씨도 “비엔날레는 국제적인 전시다. 국적과 상관없이 능력 있는 사람을 찾아 한국 미술의 체급을 올리는 게 더 중요하다”며 한국인 배려론을 일축했다. 그는 “한국 기획자도 제 밥그릇 뺏긴다고 불평하지 말고 해외에 나가 국제 행사 예술감독을 할 정도로 실력을 키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 이원일(1960∼2011) 씨가 스페인 세비야비엔날레 예술감독을 맡는 등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비엔날레 과잉론에 대한 지적도 있다. 지방자치제도를 시행하다 보니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손쉬운 치적 사업으로 비엔날레를 끌어들이며 남발되고 있다. 백 관장은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서울·광주·부산 등 세 군데서 대형 비엔날레가 동시에 열리면서 한국미술에 관한 관심이 국제적으로 집중이 되는 장점이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장르가 융합하는 현대미술의 특성상 차별화된 비엔날레를 만들지 못하는 등 ‘그 나물에 그 밥’ 같은 행사가 매년 가을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국가 전체적으로는 자원 배분의 실패라는 의견들이 많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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