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정글의 법칙'(SBS). 방송화면 캡처


지난 수십 년간 발전을 거듭해온 방송가에서 유독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는 게 있는데, 바로 사과와 대책 마련이다. 방송사나 연예기획사의 때늦은 사과와 미온한 대응은 굵직한 사건·사고가 연이어 터지고 있는 최근 연예계를 살펴보면 더 두드러진다.

태국 대왕조개 불법채취 사건으로 한바탕 물의를 빚었던 예능 ‘정글의 법칙’(SBS)은 최근 또 한 번 시청자들의 입길에 올라야 했다. 다음 시즌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제작진들은 이르면 이달 중 촬영을 위해 출국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론은 좋지 않은 모양새다. 시종일관 ‘진정성’을 강조했던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가 흔들렸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이는 사고가 터졌을 당시 방송사가 보여준 안일한 대응 탓이 컸다. 문제가 된 로스트아일랜드 편이 전파를 탄 건 지난 6월 29일. 논란은 꾸준히 퍼졌지만, 제작진은 방송 일주일쯤이 흐른 4일이 돼서야 “가이드라인을 준수해 촬영했다”는 입장을 냈다.

태국 현지에서 고발을 당하는 등 사건이 커지면서 이튿날 간략한 사과문을 냈고, 최종 입장이 나온 건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했던 시점으로부터 보름이나 지난 18일이었다. 그사이 결방은 없었다. SBS는 이날 자세한 설명 대신 “다시 한번 깊이 사과드린다”며 담당 PD 연출 배제를 골자로 하는 징계안을 내놨는데, 다수 시청자의 실망감을 다독이기엔 때늦은 시점이었다.


예능 '프로듀스X101'(엠넷). 엠넷 제공


방송 조작 의혹이 불거진 아이돌 오디션 예능 ‘프로듀스X101’(엠넷)도 비슷한 맥락의 경우다. 논란은 지난달 19일 프로그램 종영 직후 최종 경연에서 예상외 연습생이 데뷔 조에 포함되면서 불거졌다. 특히 연습생들의 득표수가 특정한 배수(7474.442) 패턴으로 설명 가능하다는 분석이 온라인에서 확산하며 논란은 더욱 불이 붙었다.

뿔이 단단히 난 팬들이 자체적으로 법적 대응에 나설 때까지도 엠넷은 침묵을 택했다. 이들은 사태 발생 닷새가 지난 25일에서야 처음 사과문을 내고 뒤늦은 사건 진화에 나섰다. 이튿날엔 “사실관계 파악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돼 수사 기관에 수사를 의뢰하겠다”는 입장을 내며 ‘유체이탈 화법’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뒤늦은 입장 발표와 미적지근한 해명이 일을 더 키운 셈이다.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는 “SNS와 온라인 환경이 발달하면서 쌍방향 소통시대가 됐는데, 대응하지 않거나 미루는 게 가장 좋은 대응일 수 있다는 관성이 연예계에 여전히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 이와 유사한 사례는 연예기획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YG엔터테인먼트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올해 초를 달군 버닝썬 사건부터 최근 대성의 불법 유흥업소 건물 논란, 양현석 전 YG 대표의 해외 원정 도박 의혹까지 매번 일관적인 대응을 보여주며 빈축을 샀다. 침묵이나 부인, 확인 불가가 그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행동이 되레 독이 될 수 있다고 바라봤다. 최 평론가는 “고심도 필요하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 명확한 답변과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는 게 더 빠른 해결 방법일 수 있다”며 “올라간 대중 눈높이에 맞춰 방송가 전반이 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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