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시도 도밍고가 지난 5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음악관련 프레스 컨퍼런스에 참석했다. AP뉴시스

‘오페라 황제’로 불리는 플라시도 도밍고(78)가 30년 넘게 여성들을 성추행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AP통신은 12일(현지시간) 도밍고에게 성추행 당한 수많은 피해 여성 가운데 9명의 진술을 들었으며, 이들의 피해를 교차 확인해줄 지인들의 증언도 청취했다고 보도했다.

올해 데뷔 60년을 맞은 도밍고는 세계 오페라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려왔다. 그동안 오페라에서 150개가 넘는 배역을 소화했으며 4000회 이상 공연에 출연하는 기록을 세웠다. 테너와 바리톤을 넘나드는 현역 성악가인 그는 동시에 음악 행정가이자 지휘자로서도 존재감이 크다. 워싱턴오페라의 총감독, LA오페라의 총감독을 역임했으며 젊은 성악가들의 등용문인 오페랄리아 국제 콩쿠르를 창설했다.

하지만 도밍고가 오페라계에서 자신의 위상을 내세워 여성들에게 성적인 요구를 해온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AP는 전했다. AP가 인터뷰한 9명은 성악가 8명과 무용수 1명이다. 이들 9명 가운데 7명은 도밍고의 성적 요구를 거절한 것이 경력에 악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또 1명은 어쩔 수 없이 성관계를 했다고 밝혔다.

피해 여성 가운데 유일하게 실명을 공개한 소프라노 퍼트리샤 울프는 “워싱턴오페라에서 공연할 때 도밍고는 내가 무대에서 내려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가 은밀히 ‘오늘밤 집에 가야해?’라고 묻곤 했다”고 밝혔다. 이어 “탈의실에서 나갈 때 복도에 도밍고가 있을까 봐 두려웠다”면서 “당시 남성 동료들이 도밍고의 비행을 외부에 공개하고 싶다면 도와주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울프는 1998년 워싱턴 오페라에서 경력을 시작했는데, 도밍고는 워싱턴 오페라에서 1996~2003년 예술 감독을, 2003~2011년 총감독을 역임한 절대 권력자였다. 실제로 AP가 접촉한 울프의 전 동료는 울프가 당시 불안해했으며, 공연이 끝난 뒤 차까지 가기 무서워해 자신이 데려다주곤 했다고 밝혔다. 현재 61세인 울프는 “도밍고는 내가 몸담은 오페라업계에서 신과 같았다”고 강조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도밍고와 두 차례 성관계를 가졌다고 고백한 여성도 있었다. 이 여성은 1988년 도밍고를 처음 만났을 때 LA오페라 합창단원이었다. 그는 “도밍고가 ‘내 아파트로 와. 내가 코치해줄게’라고 말하곤 했다”고 밝혔다. 당시 도밍고는 극장에서 공공연히 그의 허리에 손을 대거나 뺨에 입술을 대곤 했다. 당시 상황을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한 남성 성악가는 AP에 해당 여성이 “ 어떻게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지 조언을 구하고 다녔다”고 회상했다.

이 여성은 “1991년 결국 나는 굴복해서 도밍고와 잠자리를 했다. ‘그래. 이게 내가 해야 할 일인 것 같아’라는 심리적 상태였다”고 말했다. 이어 “도밍고가 ‘공연 전에 여자와 함께 있어야 하는 미신이 있다’고 발언한 것을 아직도 기억한다”고 덧붙였다.

1998년 도밍고는 LA오페라의 예술 감독이 됐다. 당시 LA오페라에서 활동하던 여성 성악가는 “덫에 걸린 기분”이었다면서 “나는 완전히 겁먹어서 도밍고에게 ‘안돼’라고 말할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도밍고가 샴페인을 마셨다며 자신의 집까지 데려달라고 했을 때 굴복하지 않으면 오페라 경력을 쌓을 수 없다고 느껴서 지시를 따랐다”면서 “이후 도밍고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내 몸을 만졌다. 나는 당시 도밍고가 사냥하는 먹잇감이 된 기분이었다”고 털어놨다. 이 여성의 지인은 AP에 당시 “친구의 몸무게가 급격하게 줄고 신경이 쇠약해졌다. 누군가가 심리적으로 살해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고 밝혔다.

도밍고는 AP의 구체적인 질문에 답변하지 않고 성명을 통해 “익명의 개인들이 30년도 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혐의를 제기하는 건 매우 골치 아픈 일이며 부정확하다”며 “얼마나 오래된 일이고 내 진짜 의도가 무엇이었는지와 관계없이, 내가 누군가를 불쾌하게 하거나 불편하게 했다는 게 마음 아프다”고 밝혔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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