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선생 기념비 제막식에 가다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선생의 기념비와 흉상 제막식이 12일(현지시간) 러시아 우수리스크 최재형기념관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김재윤 전 국회의원, 정병천 국가보훈처 과장, 오성환 블라디보스토크 한국총영사, 안민석 국회의원, 소강석 한민족평화나눔재단 이사장, 최발렌틴 러시아독립유공자후손협회장, 문영숙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 이블라디미르 우수리스크 시의원.

“두 무릎 꿇고 앉아 주님께 기도할 때/ 접시 두 개 콩밥덩이 창문 열고 던져줄 때/ 피눈물로 기도했네 피눈물로 기도했네… 대한이 살았다 대한이 살았다….”

광복 74주년을 앞두고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 있는 최재형기념관에서 슬프고도 거룩한 창가(唱歌)와 가곡이 비에 젖어 울려 퍼졌다.

최재형순국100주년추모위원회(공동대표 소강석·안민석·문영숙·김니꼴라이)가 12일(현지시간)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서 개최한 최재형(1860∼1920) 기념비 제막식 추모공연에서다.

최재형 선생은 ‘조선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척살한 안중근 의사의 숨은 후원자로 연해주 일대에선 ‘독립운동의 대부’로 통한다.

기념비에는 한반도 모양의 태극기가 새겨졌다.

2.5m 높이 비석의 앞면 오른쪽엔 ‘애국의 혼 민족의 별 최재형’이란 문구가 새겨져 있고, 비석 앞쪽엔 ‘최재형 흉상’도 자리잡았다.
최재형순국100주년추모위원회가 12일(현지시간)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 설치한 최재형 선생 흉상.

기념비는 최재형이 그토록 염원한 조국의 광복을 형상화한 한반도 모양 비석으로 만들어졌다. 2.5m 높이 비석에는 태극기 문양이 새겨졌다.

비석 전면 우측으로는 ‘애국의 혼 민족의 별 최재형’이란 문구가 들어갔다. 비석 한쪽으로는 최재형 흉상도 함께 들어섰다.

흉상 아래로는 최재형의 독립운동 활동상을 한글과 러시아어로 소개했다.

제막식에는 안민석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 최재형순국100주년추모위원회 공동대표이자 한민족평화나눔재단 이사장 소강석 목사, 문영숙 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 고려인 동포인 이 블라디미르 우수리스크 시의원 등 200여명이 참석해 한목소리로 축하했다.

안민석 위원장은 “오늘 일본은 또다시 경제적 침략을 자행하고 있다”면서 “100년 전에는 우리가 힘이 없어 당했지만, 오늘 부활하는 최재형 선생의 항일정신으로 이 경제전쟁을 이겨낼 것”이라고 밝혔다.

소 목사는 기념사와 자작시를 읊었다. 그는 “오늘 역사적인 기념비를 세움으로써 최재형 선생의 애국애족 정신과 삶의 궤적이 민족의 가슴에 별처럼 빛나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소 목사는 이어 “우리가 지금도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다면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우리가 늦게나마 이런 기념비를 세울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자랑스러운 조국 대한민국이 있기 때문”이라고 역설했다.

또 “오늘 추모 건립비, 기념비를 세움으로써 애국 애족의 정신, 하나님을 위한 믿음이 민족의 광야에 별처럼 빛나기를 바란다”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고려인자치회를 대표한 이 블라디미르 우수리스크 시의원은 “최재형기념관은 독립운동의 대부를 기리는 유일한 장소”라며 “독립운동가의 후손인 고려인을 잊지 않고 많은 기여를 하는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제막식 참석을 위해 모스크바에서 온 최재형의 손자 최 발렌틴(82)씨는 “모스크바 국립대학 교수가 최재형 선생에 대해 남긴 말이 있다”면서 “우리 동포에게, 같은 마을에 살던 주민에게 최재형 선생은 실존 인물이라기보다는 수호신 같은 존재였다는 말을 남겼다”고 소개했다.

그는 또 “할아버지가 일제에 의해 총살을 당한 뒤 자손들은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 사마라로 쫓겨났고, 부르주아로 탄압을 받아 할아버지의 이름조차 꺼내지 못하고 살았다”며 “하지만 고려인들은 할아버지를 가슴 속에 기억해 내가 ‘최재형의 손자’라고 하면 감격으로 말을 잇지 못하곤 했다”고 회고했다.

창원국악관현악단 김지혜 소리꾼(부산 정관온누리교회)은 유관순 열사가 100년 전 서대문형무소 여옥사(女獄舍) 8번 방에서 7명의 동료가 수많은 공포의 밤을 서로 달래고 용기를 얻기 위해 서로 끌어안고 불렀던 결기에 찬 투쟁가를 편곡해 다시 불렀다.

테너 박주옥 교수(새에덴교회)는 소강석 목사가 내년 최재형 순국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자유의 아리아’를 장엄하게 불러 박수를 받았다.

‘최재형 장학생’ 출신인 바이올리니스트 닐루파르 무히디노바의 연주를 들으며 참석자들은 고개 숙여 국화꽃을 바쳤다.

‘시베리아 항일운동의 대부’로 통하는 최재형은 1860년대 조선에 대흉년이 들어 중국, 러시아 등지로 집단 해외 이주를 했던 시대에 함경북도 경원에서 노비 출신 소작인 아버지와 기생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났다.

10세 때 온 가족이 기근을 피해 연해주 ‘지신허’라는 한인 마을에 정착했지만, 가난의 굴레를 벗지 못했다.

이듬해 한국인으로는 러시아 학교에 입학한 첫 학생이 됐지만, 형수와의 갈등으로 가출한 뒤 부두를 헤매다가 러시아 상선 선원들에게 발견돼 선원이 됐다. 러시아인 선장 부인은 소년에게 세례를 주고 이름을 ‘패치카’(난로)라고 불렀다.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

6년간 러시아 상선을 타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견문을 넓힌 최재형은 18세 땐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는 상업회사에서 무역과 수공업을 배웠다.

이후 군납사업을 하며 부를 쌓았고, 이렇게 번 돈을 항일 독립운동과 동포 지원에 사용했다. 그가 생전 연해주에 세운 학교가 30개에 달할 정도로 한인 동포 후손 교육에 열정을 쏟았다.

최재형은 계몽 활동과 사회 활동을 하면서 주민들의 문화 수준 향상에 큰 의미를 뒀다. 특히 교회학교를 통한 교육에 큰 관심을 두었다. 조국 광복을 위해서는 의식개혁과 교육이 선행돼야 함을 누구보다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재산을 항일전투와 유격부대의 조직과 운영 그리고 학교와 교회 건립에 사용했다. 1908년에는 의병 유격대를 조직해 안중근과 함께 국내 진공 작전을 펼쳤다. 안중근 이토를 살해할 때 사용한 브라우닝 권총을 구해준 이도 최재형이였다.

최재형의 딸 올가는 생전에 남긴 회고록에서 “안중근이란 사람이 3개의 인물 그림을 우리 집 벽에 붙여놓고 사격 연습을 했다”고 밝혔다.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 사용된 무기 구입에도 최재형이 큰 힘을 썼다.

그는 마을마다 교회와 학교가 설립되고, 노보키옙스크에서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들어갈 수 있는 6년제 상급 교육 기관도 세웠다. 상급 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학생들은 민족의 지식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졸업생들은 선발 과정을 거쳐 블라디보스토크, 니콜스크-우수리스크, 블라고베쉔스크, 이르쿠츠크, 톰스크, 카프카즈와 크림 등으로 유학을 보내주었다. 이를 위한 비용은 사회에서 모금된 자금으로 지원되었다.

모든 학생은 월요일마다 수업 시작 전에 교회에서 모여 예배를 드렸다. 첫 줄에 1학년, 그 뒤에 2학년 등의 순으로 학년별로 서서 다 같이 2~3곡의 찬송(기도) 곡을 부른 후에 반별로 흩어지곤 했다.

1919년 수립한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는 초대 재무 총장에 선임됐다. 하지만 이듬해 4월 5일 우수리스크에서 일본군에 체포된 하루 만에 순국했다. 그해 5월 임시정부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추도회가 열렸다. 하지만 그의 시신은 아직 찾을 수 없어 묘지도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순국 42년 만인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러시아 난로를 뜻하는 페치카라는 애칭 때문이었을까. 최재형은 1920년 일본군에 체포돼 순국하기까지 항일 독립운동은 물론 동포들에게 따뜻한 지원을 한 것으로 칭송이 자자했다. 기념비 제막식을 거행하던 날 최재형 기념관 마당엔 종일 눈물 같은 빗방울이 흘러내렸다. 기념관 입구 오른쪽엔 최재형의 가옥에 남아있던 페치카의 원형이 복원돼 있다.

159년 전 8월 15일 태어난 최재형은 망국의 한을 풀지 못하고 60세로 순국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25년 뒤 조국은 광복을 맞았지만, 지금까지도 그의 시신과 무덤은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내년은 최재형 순국 100년이 되는 해이다. 기념비를 제막한 추모위는 그의 후손들과 함께 순국 100주년 기념식과 추모음악회, 국제 심포지엄, 다큐멘터리·출판 기념회, 사진전 등 다양한 사업을 벌일 예정이다. 우수리스크(러시아)=글·사진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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