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우리 엄마는 전쟁 때 다친 군인들을 치료하는 간호사였다고 자랑을 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잠결에 엄마가 동네 아주머니에게 털어놓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겁이 났습니다. 그 많은 사람 가운데 하필이면 우리 엄마가 겪은 일이라는 게 더 무섭고 싫기만 했습니다.”

14일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 배우 한지민씨의 목소리가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식장에 울려 퍼졌다. 이미 고인이 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딸이 어머니에게 쓴 편지였다.

딸은 어머니가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무섭고 두렵기만 했다. “뼈가 튀어나올 정도로 다친 어깨와 허리 때문에 팔을 들어 올리지도 못하시는 엄마를 보면서도 무엇을 하다 그렇게 심한 상처를 입으신 건지 차마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혹시라도 내 주변의 친구들이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어쩌나 그저 두렵기만 했습니다.”

어머니는 과거를 숨기려 했고 딸도 모른 체하고 살았다. “엄마는 일본말도 잘하시고 가끔은 영어를 쓰셨지만 밖에 나가서 이야기하실 때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철없는 저는 엄마가 부끄러웠습니다. 가엾은 우리 엄마.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시간이 흘러 어머니는 수요집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딸도 어머니의 과거를 하나씩 알게 됐다. “엄마가 아픈 몸을 이끌고 미국과 일본까지 오가시는 것을 보면서 엄마가 겪은 참혹하고 처절했던 시간들에 대해 자세하게 알게 됐습니다.”

그렇지만 어머니는 진정한 사죄도, 보상도 받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딸은 살아있는 모든 순간 고통과 싸웠을 어머니를 생각하며 울고 또 울었다. “엄마가 생전에 하시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끝까지 싸워다오. 사죄를 받아다오. 그래야 죽어서도 원한 없이 땅속에 묻어 있을 것 같구나.’” 이제 딸은 어머니의 못다 한 소망을 이루겠다고 다짐한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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