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 임대아파트에서 북한이탈주민 한모(42)씨와 여섯 살 아들이 죽은 지 두 달쯤 지난 상태로 발견됐다. 경찰은 이 모자가 굶어서 죽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정확한 사인은 부검 결과가 나와 봐야 안다. 그러나 ‘아사’라는 단어가 시민들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탈북’이라는 말도 사람들의 가슴을 건드렸다. 굶주림을 피해 북한을 탈출한 40대 여성이 서울에서 어린 아들과 함께 죽어가는 동안 아무도 이들을 보지 못했다.

탈북 모자의 죽음은 두 달 만에 발견됐다. 모자가 굶어 죽은 것이 맞다면 죽기 전에도 이들의 상황은 매우 비참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그 긴 시간 동안 국가도, 지방자치단체도, 주민도 이 가난한 모자를 돕지 않았다. 이들의 비극적 죽음은 우리 사회가 구축해온 사회복지네크워크의 취약성을 다시 한 번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14일 관악구 공무원은 “사회복지시스템이 여러 가지 있는데, 죽은 한씨 모자의 사례는 공교롭게도 이런 시스템을 다 비껴갔다”고 말했다.

한씨 모자가 사회복지시스템에서 제외된 이유는 일단 기초생활 수급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성동구의 한 공무원은 “기초생활 수급자가 되면 지자체가 관리를 한다”면서 “수급자가 아니라면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고 얘기했다.

숨진 한씨는 탈북해 10년 전인 2009년 한국으로 왔다. 그의 첫 정착지가 관악구다. 이후 조선소에서 일하는 중국 국적 남성과 결혼해 2012년 통영으로 떠났고, 이듬해인 2013년 아들을 낳았다. 한씨 가족은 사업을 위해 2017년 중국으로 떠났다. 이들이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것은 지난해 9월. 한씨는 지난 1월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아들을 키웠다. 남편은 중국에서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악구에 따르면, 한씨는 2009년 봉천동 임대아파트 전입 후 기초생활 수급자로 등록됐다. 그러나 알바 등으로 소득이 발생하면서 2010년 수급자 자격이 중단됐고, 그 후로 관악구나 통영시에서 수급자 신청을 한 적이 없다.

지난 10월 한씨는 관악구에 새로 전입신고를 하면서 주민센터에 아동수당과 양육수당을 신청했다. 그러나 기초생활 수급 신청은 하지 않았다. 한씨는 소득이 없었기 때문에 이혼 후에는 기초수급자가 될 수 있었다. 관악구 관계자는 “왜 수급 신청을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며 “다만 지난 9월 임대아파트로 돌아온 후에도 남편이 있는 중국을 자주 오갔다고 한다”고 전했다.

기초생활 수급자가 아니지만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발굴하기 위한 시스템도 다양하게 가동되지만 한씨 모자는 도움을 받지 못했다.

서울시의 경우,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복지 사각지대를 발굴하고 지원하기 위해 ‘찾동(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사업을 대대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동주민센터당 2∼3명의 사회복지 전문인력을 증원해 어려운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있다. 그러나 찾동 역시 누군가 어려운 사람이 여기 있다고 알려주지 않는 이상 대상자를 발견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서울 각 구청들은 ‘복지통장’ 제도 등을 통해 통장이나 반장이 주민들의 사정을 살피고 어려운 가정이 있으면 동주민센터에 알리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렇게 발굴된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긴급복지’ 제도도 운영한다.

그러나 한씨 모자는 누구의 눈에도 발견되지 않았다. 봉천동 임대아파트에 재정착한 시기가 길지 않았던데다 주민들과 교류가 없었고 중국을 오가며 집을 비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양천구 공무원은 “일반주택 거주자라면 사람들이 오가면서 집안 사정을 눈치 챌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아파트는 문 닫아놓으면 외부와 단절되고 만다”고 말했다.

복지부의 ‘복지 사각지대 발굴관리시스템’도 한씨 모자를 체크하지 못했다. 이 시스템은 전기요금, 수도요금, 가스요금, 관리비, 임대료, 건보료, 이자 등 29가지 징후를 파악해 위기가구를 찾아낸다.

한씨는 16개월간 임대아파트 월세를 내지 못해 보증금으로 제했고, 전기요금도 16개월간 내지 못했다. 그러나 위기가구로 잡히지 않았다.

전기료를 3개월 이상 체납한 사람의 정보는 한국전력공사가 복지부에 통보해야 한다. 그러나 임대아파트라서 전기료가 관리비에 포함돼 개별 가구의 체납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또 한씨처럼 재개발 임대아파트에 사는 주민은 월세가 아무리 밀려도 복지부에 통보되지 않는다. 정부가 임대료 체납 정보 수집 대상 아파트를 영구임대, 국민임대, 매입임대 등 세 가지 유형으로 한정했기 때문이다.

탈북자 관리체계도 문제점이 드러났다. 탈북정착자는 5년간 경찰과 구청에서 특별관리한다. 그러나 거주 5년이 경과하면 특별관리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 후엔 경찰에서 분기에 한 번, 혹은 1년에 한두 번 연락을 하는 방식으로 관리하지만 한씨는 경찰의 연락도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별로 탈북민들을 돕는 봉사단체들도 활동한다. 탈북정착자들과 결연을 맺고 정기적으로 가정을 방문한다. 그러나 한씨 모자에겐 이런 손길도 미치지 않았다.

서울 양천구 신정7동 적십사봉사회 정옥희 회장은 “한국으로 나온 지 10년이 된 사람이 아사했다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다.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면서 “정착 초기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는 좀 있지만 탈북자 대부분이 생활력이 강한 편”이라고 말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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