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페미니즘은 ‘남성혐오’가 아니라 ‘정의구현’ 운동입니다. 인권운동이라고 (포괄적으로) 말하지 말고 ‘페미니즘’이라고 명확하게 말해야 합니다.”

나이지리아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42)가 국내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저서 ‘보라색 히비스커스’와 ‘아메리카나’를 소개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페미니즘의 아이콘이다.

그의 소설들은 주로 여성문제를 다룬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엄마는 페미니스트’ 등을 잇달아 발표하며 주목받았다. 이번에 한국에 소개한 소설들도 주어진 환경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주체적인 여성의 모습을 그렸다. ‘보라색 히비스커스’는 캄빌리의 이야기다. 그는 나이지리아 상류층의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권위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그가 이 상황에서 벗어나 성장하는 과정을 담았다. ‘아메리카나’는 이페멜루의 이야기다.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떠나면서 겪은 인종차별에 대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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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국의 미투 운동에 대해 ‘진보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하면서 “그동안 성폭력 피해자들은 폭로를 주저했다. 대중이 증언을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이제는 피해자들의 주장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투 운동은 가히 혁명적”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의 탈코르셋 운동에 대해서는 “여성성과 패션, 화장품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탈코르셋 운동은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여성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 선택권을 회복시켜주기 때문”이라며 “여성스러움과 외모에 대한 사회의 요구에 맞서 이에 부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여성을 존경한다”고 했다. 아디치에는 ‘메이크업을 사랑하는 페미니스트’다.

이어 “여성이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외모로 평가받는 부당한 상황이 변해야 한다. 탈코르셋 운동의 취지는 ‘외면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것”이라며 “여성에게 다양성이 허락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페미니즘 운동을 처음 시작하던 시기를 기억하면서 “내가 나이지리아에서 페미니즘을 이야기하기 시작할 때 ‘악마’라고 불렸다”며 “페미니즘에 대해 부정적인 고정관념이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페미니즘을 끌어안아야 한다. 인권운동이라고 포괄적으로 말하지 말고 ‘페미니즘’이라고 명확하게 말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페미니즘이라고 확실히 말해야 (성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다. 병원에 가서 ‘귀가 아프다’고 말해야만 의사가 환자의 증상을 제대로 알 수 있고, 귀 치료제를 받을 수 있다”며 “오랫동안 여성이 억압당했다면 그 대안으로 페미니즘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디치에는 ‘한국의 젊은 페미니스트’에 대한 이야기도 꺼냈다. 그는 내한해 한국 페미니스트들을 만났다. 그가 직접 요청해 성사됐다. 아디치에는 “한국의 젊은 페미니스트들의 용기와 희생에 큰 감명을 받았다”며 “어떤 분은 협박 때문에 가명을 쓴다더라. 메갈리아 현상도 흥미로웠다. ‘미러링’ 문화도 이 사회에 여성 혐오가 얼마나 뿌리 깊은지 생각하게 하는 효과를 지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불법촬영 범죄에 대해 들을 때 충격을 받았다”며 “경제적 차별도 실망스러웠다. 여성들이 ‘동일노동’을 하고도 ‘동일임금’을 받지 못한다고 하더라. 남녀 임금 차이에서 후진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는 점은 실망스러웠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성평등한 사회를 위해 행동하는 젊은 페미니스트들의 모습에서 희망을 봤다. 남성들은 이러한 노력과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무수한 비난 속에서도 페미니즘 운동을 지속하는 이유에 대해 “내가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페미니스트로서 정체성이 생기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발언을 멈출 생각이 없다. 날 악마라고 불러도 괜찮다”며 “난 정의로운 세상에 살고 싶기 때문에 페미니즘 운동을 멈출 수 없다. 변화를 이끌어내는데 보탬이 되고 싶다. 작은 걸음들이 진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시종일관 침착하고 차분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어나가던 그가 유독 힘줘서 한 마디로 정리한 질문이 있었다. “페미니즘이 갈등을 일으킨다는 비판이 있다. 어떻게 보완돼야 하느냐”고 묻자 그는 “없다(Nothing)”고 답했다. 그러면서 “어떠한 운동도 완벽할 수는 없다. 흑인 민권운동도 완벽하진 않았다. 평등을 주장하는 것인데 그것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 초점 맞춰서는 안 된다”며 “불의에 맞서는 운동이면 갈등은 당연히 생길 수 밖에 없다. 남녀평등을 이야기해서 갈등이 일어나면, 그것이 페미니즘 때문인지 생각해봐야한다”고 힘 줘 말했다.

이어 “더 많은 남성이 (페미니즘 운동에) 참여했으면 좋겠다. 페미니즘이 남성혐오도 아니고, 남성을 때리려는 것도 아닌데 고정관념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페미니즘이 원하는 대화에 걸림돌이 될 뿐”이라며 “남성도 페미니스트가 되면 행복해질 수 있다. 남녀를 불문하고 각각의 개인으로서 존중받고 그것을 통해 행복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 페미니즘”이라고 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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