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습 사건이 일어난 레넌 벽. 연합뉴스

‘범죄인 인도법(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 내 집회가 격화되면서 시위 지지자들이 괴한에 피습당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주홍콩 영국 총영사관 직원이 중국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실종됐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홍콩 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0일 오전 1시35분쯤 정관오(將軍澳) 지역의 보행자 터널에서 송환법 반대 시위 관련 이야기를 나누던 여성 2명과 남성 1명이 흉기를 든 괴한에게 공격당했다고 이날 보도했다. 사건 발생 장소는 홍콩 시민들이 시위 지지 메시지를 붙여놓은 이른바 ‘레넌(Lennon) 벽’ 인근이다.

목격자는 피해자들이 시위 관련 대화를 나누자, 이를 들은 한 남성이 갑자기 흉기를 휘둘렀다고 주장했다. 피해자 3명 중 1명인 여성 A씨는 어깨·등·손을 찔려 중태 상태로, 현재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A씨는 홍콩 일간지 ‘신보’의 기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피해자들은 각각 머리와 팔에 부상을 입었다.

당시 사건 현장을 촬영한 영상은 인터넷에 공개됐다. 시민 4~5명 정도가 비명을 지르며 터널에서 도망치는 장면이 영상에 담겼다. 현장에 있었던 피해자의 친구는 “한 남자가 접근하더니 우리가 시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다”며 “우리 의견을 말하자 ‘더는 못 참겠다’고 하더니 주머니에서 흉기를 꺼내 내 친구 2명을 찔렀다”고 주장했다.

다른 목격자는 “두 여성이 한 중년 남성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봤는데 나중에 분위기가 격해졌다”면서 “그 남자가 터널에서 우리를 20분 정도 지켜보고 있어서 매우 불편했었다”고 말했다.

주홍콩 영국 총영사관 직원이 중국 출장에서 돌아오던 중 실종됐다는 보도도 같은 날 나왔다. 홍콩 온라인 매체 ‘홍콩01’에 따르면 사이먼 정(28)은 지난 8일 비즈니스 회의 참석을 위해 홍콩과 인접한 중국 선전으로 갔다가 행방이 묘연해진 상태다. 사이먼 정의 여자친구 리모씨는 그가 8일 오후 10시 무렵 자신에게 ‘고속철에 탔다’ ‘(홍콩과 중국) 경계를 통과하고 있다’ 등의 문자를 보낸 뒤 연락이 끊겼다고 했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사이먼 정이 마지막으로 남긴 문자는 ‘나를 위해 기도해달라’였다.

리씨는 사이먼 정이 홍콩 경계를 통과 중이라고 말했던 점으로 미뤄 그가 홍콩 내에 있는 고속철인 웨스트카오룽 역에서 중국 공안에 억류된 것으로 추정 중이다. 웨스트카오룽 역은 홍콩과 중국 본토를 잇는 고속철 역으로, 출·입경 관리소 등에 중국법이 적용되며 중국 공안 등이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리씨와 사이먼 정의 가족은 홍콩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한 상태다. 홍콩 경찰도 중국 당국과 협조하며 수사를 벌이고 있다. 리씨는 “홍콩 이민국 당국자에게서 남자친구가 중국 본토의 알 수 없는 곳에서 불분명한 이유로 행정구류를 당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중국 공안 당국은 치안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 등에 대해 재판 없이 최장 보름간의 ‘행정구류’ 처분을 내릴 수 있다.

영국 외교부는 “주홍콩 총영사관 직원이 선전에서 돌아오다가 체포됐다는 보도에 극히 우려하고 있다”면서 “광저우와 홍콩 경찰에 관련 자료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국 측은 사이먼 정의 실종에 대해 알지 못 한다는 입장이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을 통해 “관련 상황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고, 이번 사건이 홍콩 시위와 관련이 있냐는 질문에도 “파악된 부분이 없다”고만 했다.

앞서 영국 정부는 송환법 반대 시위가 격회되는 것과 관련해 중국이 1997년 홍콩 주권 반환 당시 한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며 수차례 비판했다. 중국 정부는 이에 ‘내정간섭’이라고 반발한 바 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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