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영상 캡처

트레일러에 치여 숨진 20대 비정규직 고속도로 순찰대원들이 사고 직전 음주단속을 하던 장면이 담긴 고속도로 CCTV영상이 방송을 통해 공개됐다. 공개된 영상엔 순찰대원들이 경찰의 음주단속을 돕는 장면과 단속에 걸린 카니발의 운전자가 조수석으로 자리를 옮기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경찰이 이 영상을 조금만 일찍 확인했다면 순찰 대원들이 고속도로 갓길에서 1시간 이상 대기하다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어서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오전 0시 50분쯤 경기 시흥시 제2서해안고속도로 군자 분기점 시흥방면 42㎞ 지점 갓길에 서 있다 25t 트레일러에 치여 순찰대원 허모(21)씨와 양모(26)씨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숨진 이들은 경찰의 음주단속을 돕다 갓길에서 1시간 이상 대기하다 변을 당했다.
MBC는 사고 직전 고속도로 CCTV영상을 입수해 21일 공개했다. 공개된 영상에는 카니발 차량이 비상등을 켠 채 속도를 줄이며 갓길로 들어선다. 3분쯤 뒤 흰옷을 입은 남성이 운전석에서 내린 뒤 차 뒤편에서 잠시 서성이다 슬그머니 조수석으로 들어가 앉는다.

남성은 이날 경찰과 음주운전 여부를 놓고 실랑이를 벌였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했을 당시 남성은 조수석에 앉아 있고 운전석은 비어 있었다. 차량 왼쪽 타이어는 이미 어디선가 부딪힌 듯 파손됐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이 남성을 운전자로 의심하고 실랑이를 벌인 끝에 겨우 음주측정을 했다. 혈중알코올농도 0.127%로 면허취소 수준이었다.

그러나 남성은 자신이 결코 운전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김영태 인천지방경찰청 고속도로순찰대장은 “대리기사가 데리고 왔다고 했다. 자신은 잠이 들었기 때문에 오는 과정이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며 “대리기사 전화번호를 달라고 하니 친구가 불러줬다고 했고 그 친구의 전화번호를 받아 전화했더니 연락이 안 됐다”고 MBC에 말했다.

남성이 음주운전을 부인하자 경찰은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하느라 시간을 허비했다. 그 사이 좁은 갓길에 서 있던 순찰대원과 경찰은 25t 트레일러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다. 트레일러 운전자 A씨(50)는 사고 직후 도주해 시흥의 한 모텔에 숨어있다 약 13시간 만인 당일 오후 2시쯤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경찰조사에서 “졸음운전을 했다”고 진술했다. A씨는 교통사고 처리 특례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검찰에 송치됐다. 반면 카니발 운전자는 ‘음주운전’ 혐의만 적용돼 검찰로 송치됐다. 현장의 조치를 지연시키다 발생한 참사의 책임은 묻지 않은 셈이다.

숨진 순찰대원 허씨의 유족은 “경찰이 단순 음주운전자를 하나 처리하는데 한 시간씩이나 갔고, 숨진 순찰대원은 음주운전자를 경찰관에게 신고해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죽은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허씨의 유족은 또 사고 충격으로 도로에 튕겨 나간 피해자가 2차 사고를 당했는데도 경찰이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며 수사 진행 과정에 이의를 제기했다. 유족은 최근 고인의 교통사고 사실확인원을 발급받았다가 1차 사고 발생 직후 SM6 차량이 도로 1~2차로에 누워있던 허씨를 치고 지나간 사실을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시흥서는 사고 현장에 출동한 인천경찰청 소속 고속도로순찰대 차량에 설치된 블랙박스를 확인한 결과 이런 장면을 뒤늦게 발견하고 이달 초 SM6 운전자를 교통사고 처리 특례법 위반 혐의로 조사했다.

경찰은 SM6 운전자가 당시 밤늦은 시각 고속도로 위에 사람이 누워있을 거로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사고 차량 낙하물을 밟았다며 피해 신고를 한 점 등으로 미뤄 그를 ‘혐의없음’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런 사실을 유족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허씨의 유족들은 수원시 지방청 민원실을 찾아 “당시 사건을 담당한 시흥경찰서 수사 과정에 미흡한 점이 없었는지 감찰해달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제출했다. 아울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엔 자신을 숨진 순찰대원 가족이라고 소개한 누리꾼이 경찰에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한다는 청원을 올려 눈길을 끌기도 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