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식민화, 그루밍 성폭력으로” 드디어 무용계도 #METOO#WITHYOU

무용계 #metoo, 침묵의 카르텔을 깨다… 그루밍 성폭력, ‘동의’라는 이름의 강요


“왜 무용계만 이렇게 조용해?”

2년 전, 서지현 검사를 필두로 미투 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다. 하지만 지금까지 침묵으로 일관하는 세계가 있다. 순수 예술로 불리는 무용계다. 그들은 침묵 그 자체가 무용계가 던지는 하나의 메시지라고 말한다. 무용계의 침묵은 무용계 속사정을 읽어낼 중요한 단서라고.

사진제공=@페미플로어(@Femifloor)

여성 무용수들로 구성된 ‘페미플로어(Femifloor)’는 지난 21일 서울무용센터 무용연습실1에서 ‘무용계 #metoo, 침묵의 카르텔을 깨다’라는 행사를 마련하고, ‘그루밍 성폭력, ‘동의’라는 이름의 강요’라는 부제로 강연과 토론 자리를 가졌다.

올해 3월 결성된 페미플로어는 페미니즘(Feminism)과 댄스플로어(Dance floor, 춤을 추는데 적합한 기능을 하는 바닥)의 합성어다. 독서모임으로 시작했지만 최근 무용계 내 여러 성폭력 사건이 알려지고도 대중적 관심을 얻지 못하자 피해자를 연대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페미플로어는 “무용계는 이렇다 할 연대활동이 없었다”며 “폐쇄적인 권력구조 안에서 그 어느 곳보다 침묵이 강요되고 있음을 반증한다”고 행사 취지를 밝혔다.

이날 강연자로 나선 책 ‘꽃이 아니다 우리는 목소리다’를 쓴 윤단우 작가는 “무용계는 사회에서 고립돼 있다고 여기는 무용수가 많았다. 하지만 이들 모두 연결돼 있다. 이같은 사실을 최근에서야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강연은 ▲성폭력을 용인하는 ‘강간문화’ ▲‘예술가’라는 특별한 지위 ▲무용계 성폭력과 침묵의 이유 ▲왜 그루밍 성폭력인가 등 총 4파트로 구성됐다.

예술가라서, 기인이라서, 그래도 된다고?

강연자 윤 작가는 무용계 성폭력을 이해하려면 ‘강간문화’를 먼저 알아야한다고 했다.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용인하는 환경을 의미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여성의 권리나 안전은 경시될 수밖에 없다.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된 위치에 머물도록 만드는 강력한 수단으로 작용한다.

윤 작가는 “가장 오래된 식민지는 여성”이라며 “특히 예술가는 스스로 특별한 지위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금기를 위반해왔다. 예술 세계라는 특수성을 방패삼아 성적 일탈이 용인됐다”고 설명했다. 예술가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존재’로서 일종의 치외법권을 누렸다는 것이다. ‘거장’이나 ‘기인’이라는 말로 포장돼 그들은 당연히 그래도 됐다고 여겨졌다고 했다.

윤 작가는 “우리는 금기를 위반하며 기행을 펼쳤던 거장들을 견뎌왔다. 이제는 물어봐야한다. ‘그들의 일탈로 우리에게 대체 어떤 새로운 질서가 도래했는가’라고 말이다”라며 “이제는 확실히 안다. 예술가라고해서 (성폭력을) 해도 됐던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사진제공=@페미플로어(@Femifloor)

무용계는 왜 침묵 할 수밖에 없었나

그는 지금까지 무용계가 침묵할 수밖에 없던 배경부터 이해해야한다고 했다. 윤 작가에 따르면 무용계 내 성폭력의 경우 스승과 제자 또는 그에 준하는 관계에서 벌어졌다. 무용수들은 도제식 학습을 받는데 이를 통해 제자는 스승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게 된다. 무용계는 이 관계가 더 밀착돼 있다고 했다. 윤 작가는 “수직적 위계구조가 다른 예술계보다 단단하다”며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돼서까지 이 관계를 유지하기 때문에 피해 사실을 발설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특히 무용은 신체접촉 없이는 교육도 할 수 없다. 몸을 사용하는 예술이기 때문에 지도자는 제자의 몸을 만질 수밖에 없다. 가해자는 교습과 성추행의 모호한 경계를 악용했다. 그렇다보니 피해 사실을 폭로할 수도 없었다. 강제추행 등이 성립되려면 폭행이나 협박이 있어야하고, 피해자가 항거불가능한 상태여야 하지만 교습 중 이런 일이 벌어지다보니 피해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합리화하는 경우도 많았다. 무용계 내 성폭행 대다수는 개인연습실에서 발생했다.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동급생과 경쟁해 이겨야한다. 따라서 개인연습 공간을 얻은 것을 일종의 혜택이라고 생각하고 성폭행 피해를 묵인하는 경우가 많다. 피해가 아닌 투자라고 생각하는 셈이다. 윤 작가는 “사실 무용수들은 이게 성폭력인지도 몰랐다”고 했다.

왜 우리는 ‘그루밍’에 집중해야 하나

무용계의 경우 피해자(제자)는 가해자(스승)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직감으로 안다고 했다. 윤 작가는 “도제식 학습을 통한 수직적인 위계가 무용계가 침묵하는 원인이긴 하지만 이건 일부의 진실”이라며 “이 관계는 단순히 명령과 복종으로만 구성되지 않으며 이 밀착된 관계에서 오는 침묵을 공포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무용계 성폭력은 그루밍과 맞닿아 있다는 의미다.

무용계 사제관계는 자발적인 충성 또는 애정에 의해 유지된다. 제자는 스승에게 나름의 가치를 부여하고, 필요 이상의 존경심을 갖는다. 윤 작가는 여기서 ‘가스라이팅’을 말했다.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다.

그는 “무용계 수직적 위계의 최상단에서부터 내려오는 폭력은 흔히 상상하듯 기득권층의 권력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라며 “좋은 무용수를 길러내 더 좋은 작품을 생산하고 그로 인해 무용세계의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가스라이팅의 주요 동력”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가스라이팅은 아래는 물론 위로도 향한다”며 “무용세계의 스승들은 예술에 헌신함으로써 제자들의 본보기가 되고 제자들은 그러한 스승에게서 한 가지 가르침이라도 더 얻기 위해 자신을 낮춘다”고 설명했다.

그는 ‘신체주권’을 거듭 역설했다. 윤 작가는 “몸짓을 언어로 하는 이 세계에서 몸은 예술활동의 가장 중요한 도구”라며 “몸의 주인은 일차적으로 몸을 사용하는 본인이라기보다는 몸의 움직임 원리를 알려주는 스승이며, 궁극적으로는 예술 그 자체가 몸의 주인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강의에 앞서 여러 무용수를 만나 이 개념에 대해 물어봤다고 했다. 하지만 누구도 그 말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윤 작가는 “무용계에서는 신체주권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미 통념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건지, 아니면 무엇인지 알 필요도 없었던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후자라면 신체주권을 스스로 맡긴건지, 빼앗긴 건지도 논의해봐야한다”고 했다.

또 “무용수는 성인일지라도 어린 시절부터 스승에게 길들여진 사람”이라며 “과연 신체주권을 스스로 보유하고 있는지 물어봐야한다. 우리는 신체주권을 회복해 나의 춤을 추고 있는가. 무용수의 몸은 누구의 것인가”라고 전했다. 이어 “그렇게 길들여졌으니 무용수는 스승과 떨어지는 것을 불안해한다. 전문용어로 ‘분리불안’”이라며 “의지부족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무용수는 스승과 평생 함께 해야한다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무용수가 느끼는 불안감의 실체를 확인해야한다”고 당부했다.

특히 법조인들이 이런 심리적 배경을 명심해야한다고 했다. 무용은 스승이 제자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모두 만져줘야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탄생한다. 스승이 살펴주지 않으면 미완성 상태로 남는다. 제자의 몸, 동작, 시선을 모두 통제할 수 있는 셈이다. 윤 작가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서 신체주권은 없다고 볼 수 있다”며 “그렇다면, 춤을 출 때는 없었던 신체주권이 갑자기 성적인 접촉이 생겼을 때는 발휘될 수 있겠나. 거부하지 않았다고 그걸 자신의 의지라고 말할 수 있나”라고 지적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제부터라도 담론을 만들어가야한다. 현재는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사제지간이 많다고 하더라. “네가 볼 때 이 동작은 어때?”라는 식으로 계속해 물어보는 스승이 늘었다. 이를 보며 ‘무용계도 변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며 “하지만 똑같다. 결국에는 스승이 허락을 해야 작품이 완성되는 것이다. 동의를 얻는 과정일 뿐 신체주권을 회복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한 번의 토론회로 결론을 낼 수는 없다”며 “무용인과 주변인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무용계 내 도제식 교육과 그루밍 성폭력에서 어떻게 벗어나야할지 고민해봐야한다”고 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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