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서 별장→내시 별장’, 성락원 그래도 문화재 자격 유지될까

23일 민주당 김영주 의원실, “성락원 명승 지정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 개최


조선의 비밀 정원으로 불리며 명승(제35호)으로 지정된 서울 성북구 성락원은 조성자로 알려졌던 ‘조선 철종 대 이조판서 심상응’이 실존 인물이 아닌 것으로 최근 확인되면서 부실 검증 논란에 휩싸였다. 이 성락원이 고종(재위 1863∼1907)의 최측근이던 호종 내관 황윤명(1848∼?)의 별서였다는 사실이 새로 확인됐다. 그렇다면 이조판서의 별장이 아닌 ‘내시의 별장’도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가.

더불어민주당 김영주 의원이 23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성락원 명승지정,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한다. 이 자리에서 발제자인 이원호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내관 황윤명과 성락원의 관계에 대해 발표한다.

22일 배포된 발제문에 따르면 이 연구사는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춘파유고(春播遺稿)'에 수록된 시 '인수위소지'(引水爲小池·시냇물 끌어다 작은 연못 만들다)가 성락원 영벽지 서쪽 바위에 새겨진 시와 일치한다는 점을 근거로 성락원이 황윤명 별서(別墅)라고 설명했다.

황윤명은 고종을 모신 내관 중 최고위직 종사자로, ‘시서화삼절’로 칭송받은 이른바 ‘문인 내시’였다. 호가 춘파(春播)다. 그의 문집인 춘파유고에 실린 서문에는 김문연이 "춘파의 풍류는 드넓고 빼어나고, 시명이 대단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져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라고 극찬한 문장이 있다.

이 연구사는 명성황후가 1884년 갑신정변 당시 혜화문을 나가 황윤명의 별서로 피난했다는 사실로 찾아내다. 이를 근거로 성락원은 1884년 이전에 조성된 조선 후기 정원이 맞는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 연구사는 후대에 붙인 정원 명칭인 성락원을 대체할 만한 용어로는 춘파유고에 등장하는 쌍괴당(雙槐堂), 쌍괴누옥(雙槐陋屋), 쌍괴실(雙槐室)을 제안했다. 쌍괴당은 황윤명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추사 김정희 글씨로 알려진 영벽지 일원에 새긴 글씨 6점에 대해서는 “같은 시기 작품이 아니라 정원 조성 이전부터 개별적으로 썼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 연구사는 성락원이 황윤명이 별서를 조성하기 전에도 경승지였다는 점이 확인된 점을 들어 명승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동국여지비고와 채제공이 쓴 '유북저동기' 등을 보면 조선 후기에 성북동은 복사꽃이 만발하는 도성 내 유람처였다는 사실도 제시했다.

김영주 의원실은 그러나 1992년 문화재 지정 당시 문화부 문화재관리국의 조사보고서에 “각자가 되어있는 영벽지 주변은 보존가치가 있으나 기타 부분은 건물신축, 조잡한 조경 등으로 심히 크게 변형되어 국가지정 가치가 상실돼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적힌 사실을 확인했다.

보고서는 성락원의 본채 건물에 대해서도 "의친왕의 별궁으로 전해지나 화재로 소실돼 1955년경 심상준이 24칸으로 재축”했다고 밝혔다. 요컨대 조선 시대에 지어진 건축물이 아니라 1950년대에 만들어졌고 주변이 훼손되었기 때문에 국가지정 문화재의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추사 김정희 글씨 확인 어려워 지방 문화재 가치가 없다”고 했다. 당시의 이런 논란에도 성락원은 명승으로 지정이 된 것이다.

성락원의 명승 지위 유지 여부를 놓고 격론이 예상되는 이 날 토론에는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가 좌장을 맡았다. 또 박한규 문화재청 문화재보존국장과 박철상 한국문헌문화연구소장, 정기호 전 문화재위원, 이기환 경향신문 기자,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이영이 상명대 박사 등이 토론에 참여한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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