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보통신(IT) 업계의 ‘작은 거인(小巨人)’ 마윈 알리바바 회장이 10일 공식 은퇴했다. 알리바바를 창립한지 20년이 되는 날이다. 그의 55번째 생일이기도 하다. 그가 세운 알리바바의 현 시가총액은 4600억달러(약 549조원)에 달한다. 중국판 ‘포브스’인 후룬 집계에 따르면 마 회장과 가족들의 재산은 390억 달러(약 47조원)로 중국 최고 부자다.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마윈은 알리바바 창립 20주년이 되는 이날 공식 은퇴하고, 장융 현 최고경영자(CEO)가 알리바바 이사국 의장직을 이어받게 됐다. 마윈은 알리바바를 떠나 교육을 중심으로 한 자선 사업 분야에서 인생 2막에 도전하기로 했다.

마윈은 지난달 29일 제3회 여성창업자총회에서 “나는 알리바바그룹 회장에서 물러나는 것이지 은퇴하는 게 아니다”라며 “나는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 알리바바는 내 꿈의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는 아직 젊다. 내가 아직 부딪혀 보지 않은 게 많고 해보고 싶은 게 아주 많다”고도 했다.

마 회장은 알리바바 회장직에서 물러나지만 2020년까지 알리바바 이사회 구성원으로 남아있는데다 알리바바 지분 6.4%를 보유한 대주주로 경영 전반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마윈은 20년 전 저장성 항저우의 한 아파트에서 동료 17명과 함께 자본금 50만 위안(약 8300만원)으로 알리바바를 창업했다. 중학교 때부터 영어공부를 시작한 그는 항저우사범대 영문학과를 졸업했지만 기술 분야와는 거리가 멀었다. 졸업후 영어강사를 하면서 조그만 통역회사도 차린 그는 당시 구글에 자신의 통역회사를 소개하는 글을 올렸다가 인터넷의 위력에 눈을 떴다. 두 시간 여만에 세계 각국의 5개 기업에서 메일이 오자 인터넷 세상을 직감한 것이다.

곧이어 ‘차이나예로페이지’라는 중국 최초의 인터넷 설립했으나 실패하고, 1999년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를 세웠다. 이어 자금난을 겪었으나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에게 2000만달러를 투자받아 승승장구했다.

마윈은 중국에 인터넷 보급이 빨라지자 2003년 기업 대 소비자(B2C) 거래 플랫폼인 타오바오를 설립했다. 당시 중국 시장은 이베이가 90%를 장악하고 있었으나 마윈은 거래 수수료를 받지 않는 등 적극적인 공략으로 이베이를 압박했다. 그는 당시 “이베이가 대양의 상어라면, 나는 장강의 악어”라며 덤볐다. 2004년 내놓은 전자 결제 플랫폼인 즈푸바오(支付寶·알리페이)는 ‘결제 혁명’을 일으켰다. 이베이는 결국 2007년 철수했다.

알리바바는 2014년 미국 증시에 성공적으로 상장해 아마존, 구글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기술 기업으로 도약했다. 20년 전 마 회장을 포함해 18명으로 시작한 알리바바의 임직원은 지난 3월 말 현재 10만1958명에 달한다. 지난해 알리바바의 매출액은 3453억 위안(57조9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50% 이상 늘었다.

알리바바는 전자상거래 외에도 허마셴성을 앞세운 신유통, 금융, 클라우드, AI 반도체 제작, 영화 제작 등 콘텐츠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장융 알리바바 CEO

마윈은 “똑똑한 사람들은 그들을 이끌어 줄 바보를 필요로 한다. 과학자들로만 이뤄진 무리가 있다면 농민이 길을 이끄는 게 최선”이라는 말로 자신의 리더십을 설명했다. 그는 공동 창업자 그룹이 아닌 외부에서 발탁한 장융 최고경영자(CEO)를 자신의 후계자로 발탁했다. 2015년 CEO에 임명된 장융은 11월 11일 ‘독신자의 날’ 이벤트를 하루 매출액 28조원 이상의 ‘중국판 블랙프라이데이’로 키워냈다.

마윈은 여러 어록을 남겼다.
“변화는 고통스럽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건 더 고통스럽다.”
“가장 힘들 때 나는 남들보다 1~2초 더 견뎌낼 수 있다.”
“자신보다 더 총명한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가장 총명한 사람이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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