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1일 도쿄 총리 관저로 들어가고 있다. 이날 아베 총리는 개각을 발표했다. AP뉴시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1일 극우 성향의 측근들을 중용한 개각 및 당직 개편을 단행했다. 역사 문제와 경제 보복조치 등을 둘러싼 한·일 갈등이 한층 격화될 전망이다.

아베 총리는 정권의 핵심축 역할을 해온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과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을 뺀 각료 17명을 교체하는 개각을 단행했다. 이번 개각에는 그동안 역사 수정주의에 앞장서거나 한국 때리기를 일삼았던 인물들이 대거 입각했다는 점에서 ‘반한(反韓)’ 내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친구 내각’ ‘돌려막기 내각’ 이란 비판이 나올 정도로 측근으로 채워진 이번 인사는 아베 총리가 2021년 9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조기 레임덕을 막으면서 한국과의 역사전쟁 및 개헌에 힘을 쏟겠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우선 하기우다 고이치 문부과학상은 역사 문제에서 일본의 우경화에 앞장서왔다.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 담화를 흔들어온 인물로 관련 내용의 교과서 기술을 문제삼아 출판사를 압박한 장본인이다. 그는 아베 총리를 대신해 공물을 들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왔다. 최근 일본 정부의 수출 규제 조치와 관련해서는 북한과 관련됐다는 근거없는 ‘설(說)’을 흘리기도 했다. 아베 총리가 그를 교육 수장으로 임명한 것은 역사 수정주의를 더욱 적극적으로 밀고나가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무상 역시 일본의 침략 전쟁을 옹호하는 발언을 일삼았다. 그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 전쟁을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비판했으며, 아베 정권에 비판적인 민영 방송을 압박했다. 에토 세이이치 영토·저출산문제 담당상은 지난 8월 일본을 방문한 한국 국회의원들에게 “과거 일본에선 한국을 매춘 관광으로 찾았는데 나는 하기 싫어서 잘 가지 않았다”는 망언을 한 인물이다. 그는 징용, 위안부 문제를 부인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아베 총리는 이번 인사에서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를 주도하거나 강경 발언을 한 인사들을 내각과 자민당의 핵심 포스트에 앉혔다. 수출 규제의 주무부서 수장이던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을 요직인 참의원 간사장에 임명했으며, 규제 조치의 설계자로 알려진 아마리 아키라 자민당 선거대책위원장을 자민당 세제조사회장에 기용했다. 이와 함께 한·일 갈등 국면에서 결례 외교를 반복해온 고노 다로 외무상을 방위상에 기용했다.

아베 총리가 한국에 대한 강경파들에게 주요 보직을 준 것은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가 성공했다는 인식을 유권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들 강경파는 한·일 관계의 엉킨 실타래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 것으로 우려된다.


이날 자민당 인사에선 아베 총리의 4연임을 주장하는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과 ‘포스트 아베’로 꼽히는 기시다 후미오 정조회장이 유입됐다. 그리고 아베 총리의 측근인 시모무라 하쿠분 헌법개정추진본부장이 선대위원장에 임명됐다. 이들은 아베 총리의 숙원인 ‘전쟁가능한 국가’를 향한 개헌 추진에 힘을 모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나마 이번 인사에서 30대 고이즈미 신지로 중의원 의원의 환경상 기용이 눈에 띈다. 하지만 인기있는 고이즈미 의원을 전면에 내세워 개헌에 대한 거리감을 줄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게다가 고이즈미 의원 역시 지난달 15일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등 우익 정치인으로서의 행보를 노골화하고 있어서 아베 내각의 전체적인 색깔과 차이가 없다.

한편 이번 개각에서는 ‘자민당 내 야당’으로 불리며 아베 총리를 향해 쓴소리를 했던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의 파벌 이시바파 소속 의원들은 1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고노 외무상, 스가 장관, 고이즈미 의원 등 ‘포스트 아베’ 주자들을 모두 중용하면서 이시바파를 배제해 이시바 전 간사장을 차기 총리 경쟁에서 도태시키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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