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털이 떨어질 때 벚꽃도 지겠지”
“나는 져버릴 꽃이 되긴 싫어 I'm the tree(나는 나무)”

그룹 ‘AOA’ 리더 지민이 무대 밖에 위치한 카메라에 가까이 다가오더니 이렇게 외쳤다. 그는 ‘여성은 꽃’이라는 공식을 보란 듯 깨고 “나는 나무”라고 선언했다.

지금까지 사회는 여성을 꽃으로 봤다. 아름답지만 약한, 그래서 쉽게 꺾이던. 아름다움이 다하면 그 생명도 다하는 것으로 치부됐다. 지민이 뱉은 이 짧은 문장 안에 여성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사회가 여성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등을 아우르는 단단한 메시지가 담겼다. 섹시 콘셉트로 화려한 전성기를 지나온 ‘걸’그룹 AOA의 도발(?)은 여성 성적대상화가 만연한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통렬한 외침이었다.


AOA는 지난 12일 Mnet ‘퀸덤’에서 그룹 ‘마마무’의 노래 ‘너나 해’ 커버 무대를 선보였다. 걸그룹을 향한 성적대상화와 성적인 고정관념을 뒤집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무대는 지민의 랩으로 시작됐다. 이 공연 전반의 기획을 그가 직접 했다. 지민은 “솜털이 떨어질 때 벚꽃도 지겠지, 나는 져버릴 꽃이 되긴 싫어. I'm the tree(나는 나무)”라는 랩 가사를 빠르고 강하게 외쳤다.

이후 AOA 멤버들은 남성의 몫으로 여겨졌던 라인이 잡히지 않은, 통이 넓은 검은 정장을 입고 등장했다. AOA가 이같은 모습으로 무대에 올랐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다. 이들의 대표곡은 ‘짧은 치마’였다. 그만큼 데뷔 초반부터 섹시 콘셉트를 고수했다. 그 덕에 가요계 최정상에 서기도 했지만.

2019년 AOA는 달랐다. 남성성이 짙은 옷을 입고 무대에 섰다. 여느 때와 다르게 귀여운 표정을 짓지도, 심지어 웃지도 않았다. 예견됐던 행보로 보는 이들이 많다. 설현은 앞서 신체의 특정 부위를 확대한 사진은 여성 연예인의 것만 생산된다는 점을 지적했었다. 그러면서 “후배들이 그런 일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설현의 당부에는 성적대상화는 왜 여성 연예인에게만 씌워지는 굴레인지에 대한 질문이 들어있다.

이같은 고민이 이번 무대에 빼곡하게 담긴 듯 했다. 멤버 간 무수한 대화 끝에 얻은 결과물이었을 것이다. 남성의 시각에서 상품화됐던 자신들에게, 또 이런 시선을 견지해 온 사회를 향해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드래그 퀸’의 역할도 주목할 만 하다. 드래그 퀸이란 ‘여장 남자’를 의미한다. 성 정체성의 혼란을 기반으로 하지 않아 남성의 신체 특성을 굳이 감추지 않는다. 공연적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유희적이고 과장된 연출이 많다. AOA의 무대에 이들이 등장했다. 메시지는 분명했다. 성 고정관념을 탈피하기 위한 기획이다. 사회가 규정한 남성성과 여성성은 허상이고 이를 과감히 벗어던져야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남성과 여성은 다르지 않으며,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을 구분하는 잣대에서 자유로워지길 바라는 듯 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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