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최대 석유 생산시설이 드론(무인기) 테러로 가동 중단되면서 국제유가가 폭등세를 탔다. 한국은 사우디산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다. 정부와 전문가들은 한두 달 안에 원유 공급에 큰 차질이 빚어지거나, 가격의 큰 변동에 따른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낮다고 진단한다. 다만 휘발유 등 국내 석유제품 가격은 단기에 오름세를 탈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사태가 장기화하면 원유 수급에 큰 구멍이 생기게 된다. 유가 상승은 경제 전반에 상당한 파장을 던진다. 이에 따라 정부는 최악의 경우 전략 비축유 2억 배럴(정부 보유분+민간 보유분) 방출도 검토하고 있다.

국제유가는 16일 개장과 동시에 치솟았다. 싱가포르 거래소에서 브렌트유 선물가격은 장 초반 19.5%(11.73달러)나 오른 배럴당 71.95달러까지 치솟았다. 일간 상승률로는 1991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0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도 개장하자마자 2분간 가격이 7% 이상 오르며 ‘서킷 브레이커’(매매 일시 정지)가 발동됐다. WTI 가격은 15.5% 가까이 뛰며 배럴당 63.34달러까지 상승했다.

전 세계 원유공급의 10%를 차지하는 사우디의 원유 생산이 차질을 빚으면서 국제유가는 당분간 상승세를 탈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 당국은 이번 가동 중단으로 하루 평균 570만 배럴의 원유 생산에 영향이 있을 것으로 추산한다. 이는 사우디 전체 산유량의 절반 규모다.


국제유가에 영향을 받는 국내 석유제품 가격도 당분간 오름세를 피하기 어렵다. 이달석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은 이달부터 유류세 인하가 종료된 상황에서 국제유가 상승까지 겹치면 유가 상승에 대한 체감이 더 클 수 있다”고 말했다. 국제유가가 오르면 국내 석유제품 가격도 들썩인다. 대략 2주 정도 시차를 두고 반영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재고가 넉넉한데다, 미국 등이 전략비축유를 풀면서 공급에 숨통이 트이면 석유제품 가격은 안정화된다.

정부는 이번 사태가 한국으로 들어오는 원유 공급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본다. 사우디산 원유는 사우디에서 선박을 통해 정유시설이 있는 여수항 등으로 바로 들어온다. 사우디 정부는 비축유를 풀어 원유 수급에 차질이 없게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 등 다른 산유국이 전략비축유를 방출하면 국제적인 원유 수급에 큰 지장은 없을 것으로 본다.

정유·화학업계도 이미 대부분 3개월치 재고를 쌓아두고 있어 1~2개월 안에 타격을 입을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한다. 사태가 장기화하면 원유 수급에 빨간 불이 켜질 수 있다. 정유·화학업체들은 수입한 원유를 재가공해 판매하는데 원재료인 원유 가격이 오르면 수익이 나빠진다. 원유가격 상승은 석유제품 가격의 상승으로도 이어지면서 다른 산업으로 피해가 확산될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국내 정유사 관계자들과 긴급 석유수급 및 유가동향 점검회의를 열고 원유 공급에 문제가 생기면 정부 보유분 전략비축유 9600만 배럴(89일분) 외에 민간 보유 비축유까지 방출하는 걸 검토하겠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1991년 이라크 전쟁, 2011년 리비아 사태, 2016년 초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 발생 때 비축유를 방출한 적이 있다. 정부 관계자는 “비축유 방출은 정말 심각한 공급 차질이 발생했을 때 쓸 수 있는 최후 옵션”이라며 “그 전까지는 시장 상황을 면밀히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이종선 기자, 김준엽 기자 remember@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