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체인 A기업의 사주 B씨는 부인과 공동 소유하던 상표권 지분을 부인에게 무상으로 양도한 뒤 수십억원에 이르는 사용료를 매년 지급하다 상표권을 고가로 양수했다. B씨는 자신의 형 C씨에게 고급차량과 법인카드를 제공해 생활비를 지원하는 등 회삿돈을 일가에게 부당 유출하기도 했다.

D건설사는 거래처인 E사와 짜고 사주의 장남 F씨에게 E사가 채무가 있는 것처럼 서류를 꾸민 뒤 F씨가 가져간 D사 자금을 E사를 통해 변제받은 것처럼 장부를 조작해 법인자금을 유출했다. E사는 D사에게 거짓 세금계산서까지 만들어줬다.

국세청은 19일 기업 자금을 부당하게 유출한 사주 일가를 포함해 부동산 자산가, 미성년 고액 자산가 등 219명을 대상으로 전국 동시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219명이 보유한 재산은 총 9조2000억원(1인당 평균 419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32명은 1000억원 이상을 소유한 자산가다.

국세청은 “최근 고액 자산가의 이익 빼돌리기 수법이 과거 단순한 매출누락이나 가공원가 계상, 법인카드의 사적 사용 수준에서 벗어나 더욱 복잡하고 교묘하게 진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해외 현지법인 투자금 명목으로 돈을 송금한 뒤 유학 중인 사주 자녀 명의로 부동산을 취득하거나 생활비로 쓰는 등 기업 사주가 국외법인, 차명회사를 이용해 회삿돈을 빼돌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번 세무조사 대상에는 미성년자 등 ‘어린 부자’ 147명이 포함됐다. 이들은 1인당 평균 111억원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주식 비중이 74억원으로 가장 컸고 부동산(30억원), 예금 순이었다. 부동산 임대업자인 할아버지가 만 3세 손자에게 역세권에 있는 상가 건물을 양도하면서 계약금만 받고 소유권을 이전하는 식으로 매매를 가장한 편법 증여도 적발됐다. 자동차 부품 도매업에 종사하는 부모가 신고 누락한 현금 매출을 자녀 명의 계좌에 입금하거나, 성형외과 의사가 비보험 수입금액을 미취학 자녀 명의 고금리 단기금융상품에 투자하는 식으로 몰래 부를 세습하는 사례도 드러났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