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치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 개시라는 엄청난 소용돌이에 빠져 들었다. 야당인 민주당은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문제 삼아 트럼프 탄핵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미국 민주당 소속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의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 개시를 발표하고 있다. AP뉴시스

여기엔 의문이 붙는다. 민주당 자력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탄핵시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양원제를 채택하는 미국 정치에서 대통령 탄핵이 가결되려면 하원 전체 의석의 과반 찬성에 이어 상원 전체 의석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미국 하원의 전체 의석 수는 435석이다. 민주당이 235석으로 제1당이다. 공화당이 197석이고, 무소속 1석, 공석이 2석이다. 하원의 과반은 218석이라 민주당 혼자 힘으로 트럼프 탄핵안의 하원 통과는 가능하다.

문제는 상원이다. 상원 전체 의석은 100석인데, 공화당이 53석으로 다수당이다. 민주당은 47석이다. 상원에서 탄핵안이 가결되려면 최소 상원의원 67명의 찬성이 필요하다. 그런데 민주당은 67석은커녕 다수당도 아닌 처지다. 탄핵을 위해선 최소 20명 이상의 공화당 반란표가 상원에서 필요하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민주당의 탄핵 추진은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다.

무려 17선(미국 하원의원 임기는 2년)의 ‘노정객’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그동안 탄핵을 덫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민주당 내에서 분출되는 탄핵 주장을 억누르는데 전력을 다했다. 탄핵 추진을 추진할 경우 그 앞에 깔려 있는 지뢰들이 한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가장 큰 걱정은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었다. 탄핵안을 가결시킬 상원의원 숫자가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탄핵안이 부결될 경우 잔인한 역공을 가할 것이 뻔하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민주당의 표가 부족해 탄핵안이 통과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이를 면죄부로 활용해 ‘무죄’라는 주장을 펼칠 것이 확실하다.

민주당 입장에서 탄핵이 실패할 경우 2020년 대선에서 힘도 써보지 못하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백악관을 또다시 헌납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다 탄핵이 블랙홀 역할을 해 건강보험이나 총기규제 등 트럼프 행정부의 각종 실정까지 묻혀버릴 위험이 있다. 미국 국민이 탄핵을 둘러싸고 찬반으로 갈라질 것이라는 우려도 컸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런 위험요소들을 알면서도 지난달 24일 ‘트럼프 탄핵’이라는 칼을 끄집어냈다. 여기에는 탄핵 반대파였던 펠로시 하원의장의 입장 선회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민주당은 왜 탄핵 추진을 선택했을까. 펠로시 의장은 왜 탄핵 찬성으로 돌아섰을까.
미국 언론들은 우크라이나 스캔들의 성격, 트럼프 대통령이 저지른 위법행위의 심각성, 트럼프 대통령의 그동안의 의회 조사 활동 방해, 민주당 내의 탄핵 찬성 여론 폭발 등 네 가지를 그 이유로 꼽았다.

특히 미국 언론들은 민주당과 펠로시 의장이 능동적으로 탄핵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탄핵을 추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휘말려갔다고 분석했다. 탄핵 개시가 불가피했다는 설명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펠로시 의장이 분출하는 민주당 내의 탄핵 주장을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상태에 놓였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NYT)도 펠로시 의장에겐 탄핵 추진 말고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고 보도했다.

미국 민주당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 개시를 공식 선언했던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밤 ‘반(反) 트럼프’ 시위대가 워싱턴의 백악관 앞 라파예트 광장에서 전등으로 ‘탄핵하라(IMPEACH)’는 글자를 만들고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촉구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뉴시스

‘우크라이나 스캔들’, 미국민들이 이해하기 쉽다

민주당은 이전에도 트럼프 탄핵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러시아 스캔들’ 때문이었다. 러시아 스캔들은 2016년 미 대선에서 당시 트럼프 선거캠프가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을 위해 러시아 정부와 공모했다는 의혹이다.

12년 동안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을 지냈던 베테랑 로버트 뮬러가 특별검사로 임명돼 러시아 스캔들을 수사했다. 22개월 간의 마라톤 수사는 용두사미로 끝났다. 사건이 복잡했고 트럼프 진영의 반대 작업도 영향을 미쳤다. 뮬러 특검이 내린 결론은 “트럼프 대통령이 범죄를 저질렀는지에 대해 결론내릴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였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스캔들은 다르다는 게 민주당의 판단이다. 러시아 스캔들의 반면교사인 셈이다. 이 사건의 핵심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월 25일 전화통화에서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민주당의 유력 대선 후보인 전 부통령과 그의 아들에 대한 뒷조사를 종용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압박하기 위해 2억 5000만 달러(약 2900억원) 규모의 군사지원을 보류했다가 최근에 지원을 결정했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터지기 전까지 펠로시 의장은 탄핵 카드는 고려하지 않고, 각종 의혹에 대해 다양한 하원 상임위 조사를 실시해 트럼프 대통령을 벼랑으로 몰겠다는 전략을 구사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모든 것을 뒤바꿔 놓았다고 NYT는 전했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단순 명료하다는 점이 펠로시 의장이 생각을 바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펠로시 의장은 “우리는 선거 승리를 위해 외국 정부에게 부탁하지 않는다”면서 “우크라이나 스캔들은 국민들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이라고 말했다. 하원 정보위원회 소속의 피터 웰치 민주당 의원도 “우크라이나 스캔들은 불법 행위가 너무 명료해 모든 사람들이 알기 쉽다”고 강조했다.

사건이 이해하기 쉽기 때문에 진실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미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공화당도 민심에 굴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게 민주당의 계산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일(현지시간) 백악관 남쪽 뜰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AP뉴시스

트럼프의 위법행위가 심각해 탄핵밖에 답이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직권남용이 레드라인을 넘었다는 주장이다. 미국의 대통령이 정적의 뒷조사를 부탁했다는 것만으로 충격적인 사건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위법행위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이 어두운 요청을 했던 사람이 외국 정상이다. 뒷조사를 대가로 국가안보를 둘러싼 음험한 거래가 이뤄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펠로시 의장이 탄핵 개시를 알렸던 기자회견에서 한 발언 속에 모든 것이 담겨져 있다. 펠로시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 안보를 침해했고 미국 헌법을 위반했다”면서 “누구도 법 위에 군립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 “선거에 대한 배반”이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러시아 스캔들에 휘말렸고 민주당 흑인 하원의원들을 향한 인종차별적 발언을 쏟아냈다. 이 때 마다 민주당에선 소장파를 중심으로 탄핵 목소리가 분출했으나 펠로시 의장이 막았다. 그러나 이번 우크라이나 스캔들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트럼프 대통령의 권력 남용으로 본 것이다.

탄핵 조사를 주도하는 애덤 시프 하원 정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사악한 행동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탄핵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겁 없이 왜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이런 위험한 제안을 했을까. 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숱한 정치적 위기들을 잘 넘기면서 더욱 대담해졌다”고 진단했다.

탄핵 말고는 트럼프의 의회 조사 방해를 막을 방법이 없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의 폭발력을 감안하면 의회 차원의 조사는 불가피했다. 그러나 트럼프 진영이 조사에 협조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민주당이 탄핵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었던 세 번째 이유다.

트럼프 진영은 조사 방해로 이미 재미를 크게 봤다. 러시아 스캔들에 대한 뮬러 특검의 수사가 지지부진했던 이유 중 하나가 트럼프 진영의 방해 공작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뮬러 특검 수사 과정에서 측근들을 압박해 위증을 교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진실은 아직 베일 속에 있다.

백악관은 또 하원의 각종 조사 요구를 묵살했다. 백악관은 하원이 러시아 스캔들과 관련해 자료 제출을 요구하자 “입법 목적이 아니다”면서 거부했다.

백악관은 이어 헌법의 권력분립 조항을 언급하면서 도널드 맥갠 전 백악관 법률고문에게 하원 조사에 응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 맥겐 전 고문은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뮬러 특검 해임 지시를 법무부에 전달하라’는 요구를 받았으나 이를 거부하고 사임을 택했던 인물이다. 백악관은 그런 그의 입을 막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24일 자신의 각종 의혹을 파헤치는 하원을 겨냥해 “우리는 하원의 모든 소환장에 맞서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소환장 불응에 앞장 선 것이다.

민주당은 탄핵 추진이라는 스위치를 누르지 않을 경우 트럼프 진영이 하원의 우크라이나 스캔들 조사도 방해하고 무시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법에 규정된 탄핵 절차에 따라 하원 조사가 진행되면 트럼프 진영의 의회 활동 방해가 그나마 줄지 않겠느냐고 판단한 것이다.

WP는 “하원이 탄핵 추진 없이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조사했다면 법원에 자료 제출 소송을 했을 것”이라며 “만약에 그렇게 일이 진행됐다면 의회가 얼마나 약해보였겠느냐”고 지적했다. 트럼프 진영의 거듭된 의회 조사 방해로 인해 탄핵 추진이 불가피했다는 설명이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회 조사 방해 전략은 그동안 효과를 거뒀다”면서 “하지만 그 전략이 의회의 탄핵 조사를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진영이 즐겨 사용했던 의회 조사 방해가 탄핵 개시라는 호랑이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민주당 내에서 폭발한 탄핵 주장이 머뭇거리던 지도부를 움직이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터져 나오면서 트럼프 대통령만큼이나 민주당 지도부들도 당황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대응수위를 높고 고민했다. 그들은 탄핵 추진을 머뭇거렸다.

민주당의 소장파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 하원의원은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터진 직후였던 지난달 21일 트위터에 “대통령의 위법 행위보다 민주당 리더들의 탄핵 거부가 더 큰 국가적 스캔들”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민주당 지도부를 정조준한 것이었다. 코르테스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원래 나라로 돌아가라”는 인종차별 공격을 받았던 여성 유색 초선 하원의원 4명 중 한 명이다.

민주당 내에서도 보수파에 속하는 커트 슈라이더 하원의원까지 “당에 사로잡히지 말자”라고 촉구했다. 지도부가 탄핵 반대를 고수할 경우 이를 따르지 말자며 항명을 주장한 것이다.

지도부를 향한 탄핵 개시 요구는 폭발했다. 미네소타주가 지역구인 두 하원의원, 딘 필립스와 앤지 크레이그는 지난달 23일 의회에서 처음으로 탄핵 개시를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이것이 신호탄이 됐다. 탄핵에 찬성하는 민주당 의원이 218명으로 늘었다. 펠로시 의장이 탄핵 개시를 공식적으로 발표하기 전에 민주당 하원의원의 93%가 이미 탄핵 찬성을 들고 나선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가 탄핵을 주저했던 배경에는 공화당 우세지역에서 승리한 의원들의 비밀스런 부탁도 영향을 미쳤다. 이들은 탄핵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 다음 선거에서 목이 날라 갈 것이 불보듯 뻔했기 때문에 탄핵 추진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민주당 지도부도 탄핵 쪽으로 생각이 기울고 있었다. 펠로시 의장은 측근들과 탄핵 개시를 놓고 회의를 거듭했다.

펠로시 의장의 고민을 둘러싼 에피소드도 있다. 펠로시 의장은 탄핵 개시 발표 전날이었던 지난달 23일 유엔본부가 있는 뉴욕에 있었다. 유엔총회가 개막돼 그곳에서 정치인들과 언론인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그리곤 그 날 밤 10시 비행기로 워싱턴에 돌아왔다. 펠로시는 비행기 안에서 메모지에 처음으로 탄핵 개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었다. 그러나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그 메모지를 비행기에 놓고 내렸다고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전했다.

만약 민주당 지도부가 탄핵 개시를 미뤘다면 민주당은 치열한 집안싸움에 휘말렸거나 펠로시 의장이 트럼프 대통령보다 먼저 불신임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우크라이나 스캔들 이전 “탄핵이라는 단어를 입 밖에 꺼내지 말라”던 펠로시 의장은 지난달 24일 탄핵 개시를 공식 발표했다. 탄핵 찬성 주장이 민주당 내를 뒤덮고 있었기 때문에 펠로시 의장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것이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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