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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 벌려 평화의 다리된 ‘그리팅맨’

서울 도심을 지나다 보면 빌딩 앞에 15도 각도로 머리 숙여 깍듯이 인사하는 벌거벗은 하늘색 남성상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그 조형물 ‘그리팅맨’, 즉 인사하는 사람으로 유명한 한 유영호(55) 작가가 김종영미술관에서 개인전을 하고 있다. 1세대 추상 조각가 김종영을 기리고자 미술관이 주는 ‘오늘의 작가’상 수상 기념전이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D.M.C MBC 사옥 앞 광장에 세운 일명 ‘미러 맨’이라고 불리는 작품 ‘월드 미러’가 영화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 나와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최근 전시장에서 작가를 만났다.
유영호 작, '평화의 길'. 김종영미술관 제공

신작에는 ‘그리팅맨’을 바탕으로 남북화해와 평화를 기원하는 작가의 바람이 담겼다. ‘평화의 길’은 대지에 굳건히 다리를 묻은 두 남자가 고개를 수그린 채 팔을 둥글게 맞잡았다. 그 팔은 길이 되어 사람들이 걷고 있다. ‘인간의 다리’라는 작품도 한 남자가 팔을 길게 뻗은 채 이쪽과 저쪽을 잇는 다리를 만들어주고 있다.
작품 '평화의 길' 앞에서 포즈를 취한 유영호 작가.

작가는 “언젠가 임진강에 저 다리를 놓고 싶다”며 “현대미술이 난해하다지만, 제 작품은 전혀 그렇지 않다. 누가 봐도 평화의 메시지를 던지는구나. 평화를 위해서는 자기 어깨를 내주는 저런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 작가는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한 뒤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유학했다. 요셉 보이스, 백남준 등이 교수로 재직했던 ‘플럭서스’ 운동의 요람으로 유명한 학교다. 그런 영향으로 그도 처음에는 개념미술 작품을 하고자 했다. 그랬던 그가 누구나 단박에 알 수 있는 작품을 하게 된 것에는 계기가 있다.
유영호 작, '인간의 다리'.

유학 시절인 1999년 그룹전을 할 때였다. 그는 전시장을 찾아주는 손님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자신이 큰절을 하는 장면을 담은 영상을 설치작품들과 함께 선보였다. 당시 찾아온 유명 조각가 헹크 피쉬가 “인사는 모든 관계가 시작되는 첫걸음”이라며 그 작품을 극찬했다.

그 사건이 계기가 돼 그리팅맨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2003년 작은 모형이 처음 탄생했고, 현재와 비슷한 높이 3.5m 그리팅맨은 2007년 경기도 파주 헤이리에 처음 선보였다.
유영호 작 , '연천 옥녀봉-장풍 고잔상리 그리팅맨' 모형도.

그는 “인간은 태어날 때 옷을 입지 않는다. 또 옷이 있으면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다. 그래서 누드”라고 설명했다. 또 “여러 각도의 인사를 고민했다. 너무 숙이면 비굴해 보일 수 있다. 15도는 충분히 상대방을 존중한다는 의사를 전달하면서도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각도”라고 했다.

전시 제목은 ‘요기’이다. 북쪽의 황해남도 장풍군 고잔상리 마량산을 의미한다. 그는 2016년 4월 경기도 연천군 옥녀봉에 그리팅맨을 세운 바 있다. 당시는 북한의 연이은 핵실험으로 남북 관계가 험악할 때였다. 이런 시국에 무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는 휴전선을 경계로 마주한 남쪽 옥녀봉에 북쪽의 고잔상리에 그리팅맨을 각각 세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북쪽에는 아직 세우지 못했다. 어서 그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그의 목소리가 진지했다. 11월 3일까지.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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