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이 책은 ‘나의 서울유산답사기’다. 이렇게 말하면 유홍준의 베스트셀러 시리즈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떠올리기 쉬운데, 미리 말하자면 유홍준의 그것과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저자의 전작인 ‘서울 선언’(2018)을 떠올려보자. 서울 선언은 ‘서울 연구’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궁궐이나 왕릉이 아닌, 사대문 밖 변두리에 주목한 책이었다.

전작의 후속작 성격을 띠는 ‘갈등 도시’에서 저자가 가리키는 서울은 전작이 그랬듯 조선왕조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품은 사대문 안이나 ‘서울특별시’에 포함된 지역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서울은 “서울 세력권”에 드는 수도권 여러 도시를 아우르는 용어다. 저자는 “대서울(Greater Seoul)”이라는 개념을 통해 서울의 의미를 확장한 뒤 대서울 탐방에 나선다.

‘나의 서울유산답사기’라고 정의할 때 ‘유산’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미리 짚고 넘어가야 할 이 책의 포인트다. 저자는 전작에서 이렇게 적었다. “이제까지 서울을 말해 온 사람들이 조선 시대 궁궐과 왕릉, 양반의 저택과 정자들을 주로 거론해 온 것은 대단히 편협한 귀족주의적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즉, 그가 글이 겨냥한 지점은 시민들의 삶이 녹아 있고 그들의 애환이 담긴 서울의 가장자리다. 완전히 새로운 서울답사기인 셈이다.


저자가 3개의 시층이 쌓여 '삼문화 광장'이라고 부르는 서울 을지로. 철거가 진행 중인 구역에 가림막이 처져 있다. 열린책들 제공


을지로는 힙지로? “근현대사 품은 삼문화 광장”

책에 등장하는 답사 루트는 모두 20개인데, 가장 눈길을 끄는 챕터로는 서울 을지로를 다룬 부분을 첫손에 꼽을 수 있다. 알다시피 을지로는 서울시청에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인근에 있는 한양공고까지 이어진 길이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힙지로(Hip+을지로)’로 불리는 을지로에는 노가리와 맥주 말고도 눈길을 끄는 요소가 많다. 이곳엔 ①일제강점기 지어진 일본식 가옥 ②20세기 중후반에 건립된 높고 낮은 건물들 ③21세기에 들어선 고층 빌딩이 뒤섞여 있다. 1960년대부터 만들어진 각양각색의 손글씨 간판이 낙후된 건물과 어우러지면서 오묘한 정취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저자는 각기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①~③번의 건물이 혼재해 있는 을지로를 “삼문화 광장”이라고 부른다. 그러면서 이곳에 가면 시간의 지층인 시층(時層)을 마주할 수 있다고 적어두었다. 문제는 을지로의 많은 건물이 현재 철거의 칼바람을 맞고 있다는 것. 특히 ①번이나 ②번 건물을 두고 많은 이들은 “일제 잔재”니 “개발 독재의 흔적”이니 하는 명분을 내걸며 지킬 가치가 없다고 깎아내린다. 하지만 과연 그런 것일까. 이것은 “시민의 역사”를 지우는 “파괴 행위”일 수도 있다. 저자는 “무조건 보존하자는 게 아니다”면서도 통렬한 비판을 쏟아낸다.

“을지로는 관찰하는 사람의 안목이 깊고 넓어질 때마다 새로운 발견을 하게 하는 서울 100년의 보물 창고입니다. 양미옥, 을지면옥, 조선옥, 을지 다방, 안성집, 우일집 같은 식당만 을지로의 귀중한 유산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만약 이런 공간이 단 하나도 남지 않고 모두 재개발되어 고층 빌딩이 세워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서울 시민은 문화를 누리고 역사를 논할 자격이 없습니다.”

‘갈등 도시’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답사의 방법이다. 저자는 자신의 답사법을 “도시 문헌학”으로 명명해놓았다. 문헌학은 종이 돌 나무 금속판 등에 적힌 글자를 해석해 그 뜻을 이해하고, 그 글을 읽고 쓰던 사람이 살던 사회의 특성까지 파고드는 학문이다. 그렇다면 도시 문헌학이란 무엇일까. 간판이나 플래카드, 벽보나 각종 비석을 사료(史料)로 삼는 학문이다. 예컨대 역삼동에 있는 ‘영동 수퍼’라는 간판은 강남이 영등포의 동쪽이라는 뜻에서 ‘영동’이라 불리던 그 시절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이렇듯 과거를 되새기게 만드는 보잘것없지만 귀중한 유산을 우리는 “도시 화석”이라고 부를 수 있다. 저자가 도시 화석 가운데 가장 자주 언급하는 건 건물 어딘가에 있는, ‘정초(定礎)’ ‘준공(竣工)’ ‘머릿돌’ 등의 글자와 준공 일자가 새겨진 머릿돌이다. 누군가는 건물의 정체나 역사를 파악하려면 건축물대장을 보는 게 낫지 않냐고 묻겠지만, 책을 읽으면 생각이 달라진다. 머릿돌 글자의 크기 간격 글씨체에서 과거를 되새기는 데 얼마나 많은 힌트를 얻을 수 있는지 실감할 수 있어서다.

저자의 대서울 답사가 시작된 서울 관악구 봉천동. 봉천동에서 강남 방향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다. 열린책들 제공


기억의 전쟁

책은 대서울의 개념과 도시 문헌학의 의미를 살핀 뒤 답사 루트를 하나씩 일별한 구성을 띠고 있다. 답사의 시작은 저자의 거주지인 서울 관악구 봉천동. 이곳에서 시작된 탐방은 대서울을 한 바퀴 도는 형태로 진행되는데, 특이한 건 저자가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비슷한 갈등의 스토리를 마주한다는 점이다. 재건축이나 재개발을 둘러싼 충돌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현재 재개발과 관련한 일에선 한 발짝 물러서 있고, 민간 영역이 이를 주도하고 있는데 저자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재개발에 관여해 대서울이 전쟁터가 되는 걸 막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대 서울의 역사를 새롭게 보게 만든다는 점도 이 책의 미덕 중 하나다. 서울특별시가 지금처럼 특별한 시가 될 수 있었던 데는 “서울 시민이 보기에 좋지 않다고 간주되는 수많은 시설과 사람들을 경기도로 밀어낸” 일을 벌여왔기 때문이다. 서울과 경기도 경계에 빈민촌 화장터 고물상 등이 몰려 있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저자는 “도시들 경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살펴야 수도권 또는 대서울의 본질을 잡아낼 수 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답사를 통해 대서울 현대사의 아픈 흔적을 두루 살피고 나면 “더 이상 예전처럼 정치적으로 순진무구하게 대서울을 바라볼 수 없게 된다”고 말한다.

시민의 역사를 지워버리고, 그 자리를 조선 시대의 왕이나 사대부의 문화 채우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는 사실을 드러낸 지점도 흥미롭게 읽힌다. 그렇게 해야 내 고장이 자랑스러운 역사성을 띤다고 여겨서인데, 경기도 의정부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의정부는 한국전쟁 이후 미군 부대가 들어앉아 군사도시의 성격이 강한 지역이다. 동시에 이곳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별장인 직곡산장이 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조사를 해보면 직곡산장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물적 증거가 없는 셈이다. 그런데 의정부에는 ‘흥선동’ ‘흥선로’ ‘흥선역’처럼 흥선대원군을 강조하는 지명이 많다. 저자는 이런 현상이 “미국 기지의 이미지를 희석시키려는” 의정부시의 의도일 것이라고 넘겨짚는다.

서울이나 수도권에 거주하는 독자가 아니라면 이 책은 얼마간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책을 읽으면 도시 답사의 진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는 거다. “보여주고 싶은 것은 잘 정리해놓은 모범적이고 청결한 답사 코스”를 벗어나자는 것, “시민들이 갈등하며 살아가고 죽어 간 이야기들”에 주목하자는 것, 그래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핵심을 간파할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은 적지 않은 이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할 것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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