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정보국(CIA) 직원. 남자. 백악관 파견 뒤 CIA 복귀. 미국의 유럽정책에 해박함. 법에 대한 지식이 있음. 문제가 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대통령 간의 전화통화를 직접 듣지는 않았음’

이것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조사를 몰고 온 최초의 ‘내부 고발자’에 대해 지금까지 알려진 정보다.


미국에서 그를 아는 사람은 단 9명

그는 철저하게 베일 속에 감춰져 있다. 미국에서 그의 신원 정보를 아는 사람은 대략 9명으로 알려져 있다. 6명은 내부 고발자가 백악관에서 근무할 때 문제의 통화 내용을 그에게 알려줬거나 이 사안에 대해 같이 고민했던 당시 백악관 동료들이다.

1명은 민주당이 주도하는 하원 정보위원회의 보좌관. 내부 고발자는 고발장을 제출하기 전에 도움을 얻기 위해 그를 만났다. 이 사실이 뉴욕타임스(NYT)에 보도되자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민주당과 내부 고발자가 공모했다”는 반격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나머지 2명은 그의 변호사다.

내부 고발자, 익명으로 움직여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민주당 유력 대선 후보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뒷조사를 부탁했던 전화통화는 지난 7월 25일 이뤄졌다. 내부 고발자는 일주일 뒤 규정에 따라 커트니 시먼스 얼우드 CIA 법률고문에게 ‘우크라이나 스캔들’의 위험성을 익명으로 보고했다.

얼우드 고문 역시 절차에 따라 백악관, 법무부와 이 문제를 상의했다. 하지만 이 규정이 독으로 작용했다. 내부 고발자는 백악관이 은폐에 나서고 CIA는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내부 고발자는 ‘정보기관 내부 고발자 보호법’에 따라 8월 12일 미 정보기관 감찰관실(ICIG)의 마이클 앳킨슨 감찰관에게 A4지 9장 분량의 고발장을 제출했다. 이 법에는 ‘의회에 통보해야 하는 긴급한 우려’라는 규정이 있어 의회에 보고될 길이 열린 것이다.

그러나 조지프 매과이어 국가정보국(DNI) 국장대행은 내부 고발자의 주장이 ‘긴급 사안’이 아니라는 의회 보고를 막았다. 하지만 앳킨슨 감찰관의 노력, 내부 고발자의 하원 정보위 보좌관과 사전 접촉 등을 통해 의회도 이 사실을 알게 된다.

내부 고발자는 앳킨슨 감찰관에 고발장을 제출했을 때도 익명을 사용했다. 앳킨슨 감찰관도 내부 고발자를 모르는 상태다.

정보기관 내부고발자 프로그램 국장을 지낸 댄 마이어는 NYT에 “나는 항상 내부 고발자에게 소속기관의 법률 고문을 만나지 말라고 조언한다”면서 “법률 고문들은 보고의 의무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마이어는 이어 “(이런 상황에서) 내부 고발자는 상어가 가득 찬 탱크의 참치와 같다”고 비유했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개시를 결정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AP뉴시스

트럼프, “내부 고발자를 사기꾼으로 만들어라”

트럼프 대통령의 지상과제는 내부 고발자를 ‘거짓말쟁이’로 몰아가는 것이다. 그래야 그가 쓴 고발장도 허위가 되는 것이다. 마치 추노꾼처럼 트럼프 진영이 내부 고발자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뛰는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내부 고발자를 가만히 두지 않겠다”며 공개적으로 협박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모든 미국인과 마찬가지로 나는 나를 고발한 자를 만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사람은 미국 대통령을 상대로 스파이 행위를 하지 않았는가”라고 되물은 뒤 “커다란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6일엔 “그는 스파이와 마찬가지”라며 “예전에 우리가 더 똑똑했던 시절에는 스파이와 반역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지금과 다르게 처리했다”는 무시무시한 말을 던졌다. 사형 정도의 처벌을 내려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이 내부 고발자의 신원을 알게 된다면 그의 작은 허물이라도 물고 늘어지면서 신뢰성에 타격을 주기 위해 맹공을 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술·약물 문제, 여자·성적 취향 문제, 가족 관련 문제, 돈 문제, 정치 성향, 학창 시절 활동, 이단 등 종교 문제 등 털어서 먼지가 안 날 사람은 없다는 것이 민주당의 고민이다.

내부 고발자가 트럼프 지지자들에게 테러를 당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이미 공격 성향을 드러냈다. 내부 고발자의 변호인 중 한 명인 앤드루 바카즈는 매과이어 국장대행에게 “특정 개인들이 나의 고객(내부 고발자)에 대한 어떤 정보라도 제공하는 사람에게 5만 달러(약 6000만원)의 상금을 주겠다고 나섰다”면서 내부 고발자 신변 안전을 우려하는 편지를 보냈다.

트럼프 대통령도 반격만 가할 상황은 아니다. 제2의 내부 고발자가 있는 것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미 해군 특수부대 전직 요원들, “우리가 내부 고발자 보호하겠다”

민주당의 전략은 내부 고발자를 최대한 “꼭꼭 숨겨라”다.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과 그 지지자들의 테러 우려에서 내부 고발자를 고발하겠다는 의도다. 내부 고발자의 신원을 영원히 숨길 수 없는 만큼 극적 효과를 위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결정타를 날리는 순간에 내부 고발자를 드러내겠다는 정치적 목적도 깔려 있다.

내부 고발자의 변호인들은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지만, 내부 고발자에 대한 신변 안전 조치는 이미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CNN방송은 “내부 고발자가 여전히 직장에 출근하고 있으며 퇴근 이후에도 일상 생활을 위해 외출을 계속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CNN은 또 미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 실’의 일부 전직 요원들이 “내부 고발자를 경호하겠다”고 자발적으로 나섰다고 보도했다. CNN은 만약 이 제안이 받아들여진다면 전직 요원들은 내부 고발자의 집 등에서 개인적인 경호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주당은 하원 탄핵 조사 과정에서 공화당 의원들이 내부 고발자의 신원을 알아채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내부 고발자의 증언은 불가피한데, 이 경우 자연스레 신분이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다. 공화당 의원들이 내부 고발자의 신원을 알게 된다면 그 정보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들어가는 것은 시간문제다. ‘친(親) 트럼프’인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은 “나는 내부 고발자가 공개 석상에서 증언하도록 반드시 만들겠다”고 공언까지 했다.

민주당은 증언 과정에서 신분 노출을 막기 위해 별도의 장소에서 외부의 출입을 금지한 상태로 증언을 청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워싱턴포스트(WP)는 보도했다. 민주당은 구체적으로 비디오 카메라를 조작해 고발자의 얼굴을 불분명하게 촬영하는 방안, 목소리를 변조하는 방안 등을 고려하고 있다.

신원 공개의 또 다른 적은 언론이다. 지난 주에 특정 언론이 내부 고발자 신원을 공개할 것이라는 루머가 나돌았 때 그의 변호인들은 “공개를 말아 달라”며 ‘폭풍 트윗’을 올리기도 했다고 CNN은 전했다. 이를 보면 일부 기자들 사이에선 내부 고발자의 신원이 노출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내부 고발자에 대한 간략한 신원을 최초로 보도한 곳은 NYT다. 내부 고발자를 위험에 빠뜨렸다는 비판 앞에서 NYT는 이렇게 해명했다. “백악관도 그가 CIA 직원이라는 사실을 안다.” 어차피 쫓고 있는 자도 알고 있으니, 이 정도 정보는 공개해도 무방하다는 논리였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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