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TV화면캡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형인 김정남을 암살한 베트남 여성 도안 티 흐엉(30)이 “몰래카메라를 촬영하는 줄 알았다”며 “(범행을 앞두고) 예행연습을 한 적도 있다”고 주장했다.

흐엉은 지난 11일 일본 민영방송 후지TV와 베트남 현지에서 만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건에 대해 말하겠다”며 이같이 전했다.

지난 2017년 2월 13일 고(故)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장남인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 제2청사에서 피살됐다. 유력한 용의자는 여성 2명이었다. 이들은 김정남의 얼굴을 손으로 감싼 뒤 빠르게 공항을 빠져나갔다. 화학무기로 사용되는 신경성 맹독 물질인 VX였다. 공격을 받은 김정남은 비틀거리며 공항 의료실을 찾았지만 곧 사망했다. 이 중 한 명이 베트남 남딘 출신 흐엉이다. 그는 사건 발생 3일째인 같은 달 15일에 체포돼 2년 가량 재판을 받고 지난 5월 풀려났다.

흐엉에 따르면 당시 범행은 북한 공작원에 의해 치밀하게 계획됐다. 범행의 성공을 위해 예행연습까지 했다. 후지TV는 이날 베트남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에서 흐엉이 한 행인의 눈을 손으로 가리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공개했다. 한눈에 봐도 김정남이 살해될 당시의 상황과 유사하다. 방송은 이를 ‘훈련’이라고 표현했다. 다만 흐엉은 단순히 유튜브에 올라갈 몰래카메라를 촬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흐엉은 “미스터 Y라는 남성이 나를 섭외했다. 유튜브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했다”며 “행인에게 키스를 한 뒤 떠나는 몰래카메라 촬영을 한다고 했다. (노이바이 공항에서 예행연습을 한 후) 이번에는 새로운 여성 배우(아이샤)와 남성 배우(김정남)가 등장할 것이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말레이시아 수사당국은 ‘미스터 Y’를 북한 공작원 리지현이라고 밝힌 바 있다.

후지TV화면캡처

북한 조선노동당 정보과에서 수십년을 근무했던 익명의 북한이탈주민은 이날 방송에 출연해 “아무 것도 모르는 철없는 아이들을 암살에 이용했다는 것은 북한 입장에서는 아주 쉬운 테러였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북한에서는 김정남을 쓰레기로 취급한다”고 설명했다.

흐엉과 함께 김정남을 암살한 또 다른 여성인 인도네시아 출신 아이샤도 지난달 29일(현지시각) 영국 데일리메일과 인터뷰했었다. 그 역시 ‘리얼리티 TV쇼’를 촬영한다는 말에 속아 수주간 예행 연습을 했고 대가까지 취했다고 주장했다. 아이샤는 사건 발생 후 체포 돼 2년간 재판을 받고 지난 3월 석방됐다.

아이샤에 따르면, 그는 2017년 당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한 호텔에서 마사지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 해 1월 한 택시 운전사로부터 “리얼리티 TV쇼에서 연기할 배우를 찾는 일본인이 있는데 찾아가보라”는 말을 들었다. 그곳에는 자신을 일본의 PD라고 주장하는 ‘제임스’라는 남성이 있었다. 북한 공작원 리지우(32)였다.

제임스는 아이샤에게 쇼핑몰에 있는 아무 남성에게나 다가가 얼굴에 베이비 오일을 바르도록 했고 그 장면을 휴대전화로 촬영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이런 일이 더 있을 것”이라며 “일본인은 이런 내용을 좋아한다. 싱가포르 큰 TV쇼에 방송될 내용”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아이샤는 대가도 받았다고 했다.

아이샤는 이후 캄보디아에서 ‘미스터 장’을 만났다. 북한 공작원 홍종학(34)이었다. 촬영을 위한 연습은 계속됐다. 아이샤는 이 때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다고 했다. 그는 “미스터 장은 너무 심각했고 난 무서웠다”고 말했다.

범행 날이 다가왔다. 아이샤는 다음 촬영 회의를 위해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미스터 장을 만났다. 미스터 장은 “이번 촬영은 이전과는 조금 다르다”며 “(접근할) 인물(김정남)이 특정돼 있고, 또 다른 배우(흐엉)와 함께 촬영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미스터 장은 김정남을 가리키며 “우리 회사의 높은 사람인데, 매우 거만해 화를 낼 수도 있으니 빨리 도망쳐야한다”고 말했다. 아이샤는 “그 남성에게 걸어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다른 방향에서 나타난 한 여성(흐엉)이 그(김정남)의 눈 위에 손을 얹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감옥에서 나와서야 내가 큰 살인 사건에 휘말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며 “나는 작은 마을에서 온 소녀다. 장난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지금은 그들에게 완전히 속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제임스와 미스터 장에게 매우 화가 난다”며 “그들은 내 생사에는 관심없이 끔찍한 상황에 처하도록 만들었다”고 분노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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