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에서 70억원 규모의 부동산 전세 사기가 발생해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한 세입자는 사기를 당했다는 충격에 극단적 선택을 했고 세입자 수십명이 거리에 나앉을 위기에 처했다. 경찰은 세입자들의 보증금을 빼돌린 40대 남성을 붙잡아 검찰에 송치했다. 그는 다세대주택, 오피스텔 등 건물 3채에 투자한 후 은행 대출금을 갚지 못하자 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종암경찰서는 종암동 한 다세대주택의 재건축조합장 김모(49)씨를 사기 혐의로 지난달 말 검찰에 송치했다고 15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2016년 세입자 조모씨와 전세 계약을 하면서 본인이 건물 실소유주인 것처럼 속이고 보증금 2억여원을 빼돌렸다. 당시 건물의 소유주는 김씨가 아닌 그에게 건설 대금 등을 빌려 준 은행(자산신탁회사)이었다. 경찰은 “김씨는 임대차 계약을 할 권한이 없는데도 이를 세입자에게 알리지 않고 계약했다. 또 세입자의 보증금을 다른 공사대금이나 생활비로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설명했다.

김씨가 은행 빚을 갚지 못하면서 결국 이 건물은 최근 공매에 넘어갔다. 조씨는 ‘가짜 주인’과 계약한 셈이 돼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길거리에 나앉게 됐다. 이 건물에 살고 있는 24가구가 조씨와 같은 위기에 처했다. 이 건물에서 피해액은 50억원대로 추정된다.

피해자와 이 건물의 주택 분양을 담당한 공인중개사 등의 말을 종합하면 김씨는 부동산 담보 대출이 쉬웠던 2014~2015년 사채업자와 은행에 돈을 빌려 이 건물을 재건축했다. 이어 건설회사를 차리고 법인명을 바꿔가며 성북구 동선동 등에 오피스텔 두 채를 더 지었다. 그러나 이후 분양이 잘 안 되고 각종 공사대금 만기일이 다가오자 세입자들을 속였다.

피해자는 신혼부부, 사회초년생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계약 전 건물의 등기부등본을 확인하고 공인중개사의 자문을 받았지만 피해를 막을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피해자 A씨는 “김씨와 인근 부동산의 공인중개사가 ‘현재는 빌라 명의가 자산신탁회사로 돼있지만 전세 보증금이 들어오면 은행 대출금이 상환돼 건물이 김씨 명의로 바뀐다’며 김씨와 계약하면 된다고 했다”며 “부동산 전문가가 그렇게 말하는데 의심할 수 있었겠냐”고 했다. 또 다른 피해자 김모(35)씨는 “결혼 전후 평생 모은 보증금 2억4000만원을 날리고 부모님 집까지 뺐다. 하루하루 죽지 못해 산다”고 말했다. 한 40대 여성은 사기 피해 충격에 지난달 중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 여성의 약혼남 고모(38)씨는 “부동산을 모르는 서민만 당하는 사기 아니냐”며 “너무 억울해서 잠이 안 온다”고 했다.


김씨가 지은 다른 건물 두 채에 살고 있는 세입자 20여가구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기에 처해 있다. 피해가 현실화되면 피해 규모는 40여 가구, 70억원대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경찰과 서울북부지법에 김씨와 공인중개사에 대한 민·형사 고소 10여건이 접수돼있다. 성북경찰서도 다음 주 중 김씨를 사기 혐의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최광석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부동산 중개업자가 ‘김씨가 임대차 체결을 할 권한이 없는 상태고 실소유주는 자산신탁회사’라는 사실을 세입자에게 확인시킬 의무가 있는데 이를 어긴 것”이라며 민사상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이어 “신축 오피스텔의 경우 집 주인이 은행 대출을 받아 짓기 때문에 부동산이 신탁 등기(자산신탁회사 소유)로 돼있는 경우가 많다”며 전세 계약 때 주의를 당부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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