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의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H조 3차전이 열린 15일 평양 김일성경기장의 관중석이 비워져 있다. 이 사진은 경기 시작을 30분 앞둔 오후 5시쯤 촬영된 사진이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선수의 땀도, 심판의 호각소리도, 그라운드에서 분주하게 회전하는 공의 박진감도 우리에게 닿을 수 없다. 두 시간 남짓한 경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기록지에 작성될 숫자와 판정의 결과들뿐이다. 휴전선 남쪽에서 어느 누구도 경기의 목격자가 될 수 없다.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예선에서 처음으로 성사된 남북 축구대표팀의 평양 경기 얘기다.

남북 축구대표팀은 15일 오후 5시30분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조별리그 H조 3차전을 시작했다. 경기는 예정대로 킥오프됐고, 양 국가도 연주됐다. 태극기는 경기장 한쪽에 인공기와 함께 게양됐다. 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경기장에서 관중석은 채워지지 않았다. 한국에서 응원단·취재진·중계진의 방북이 불발된 ‘깜깜이 경기’는 북한 주민에게도 예외가 되지 않았다.

파울루 벤투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손흥민과 황의조를 투톱으로 세운 4-4-2 전술을 펼쳤다. 북한은 이탈리아 유벤투스 공격수 한광성으로 맞섰다. 하지만 승부만큼 중요하게 평가되는 것은 이 경기가 갖는 의미다. 남북의 평양전은 세계 축구사에 기록될 만큼 역사적 의미가 남다르게 평가될 수밖에 없다.

한국의 평양 원정은 두 번째다. 앞서 1990년 10월 11일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한국이 1대 2로 패배한 친선경기는 남북 교류의 일환으로 성사된 이벤트매치에 가까웠다. 한국이 앞선 16차례 승부에서 7무 8패로 압도한 북한을 상대로 유일하게 패배한 경기이기도 했다.

이번 평양 원정은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주관으로 이뤄진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추첨에 의해 편성된 공식전이다. 대표팀의 A매치나 프로팀의 리그·컵대회에서 사연을 가진 승부는 친선경기와 다르게 ‘더비 매치(Derby match)’의 의미가 부여된다. 남북전은 국내 언론은 물론 외신에서도 ‘한반도 더비’로 주목을 받는다. 대전을 거부하면 ‘부전패’가 되는 한국과의 맞대결을 북한도 피하지 않았다.

하지만 원정팀인 한국의 관중은 물론, 취재진·중계진도 경기장을 방문하지 못한 이번 경기의 진행 상황은 오직 평양발 인터넷망을 통해 전달되는 일부 정보로만 우리나라로 전해지고 있다. 평양으로 파견된 대한축구협회 직원이 국내에 있는 다른 직원에게 이메일을 발송하고, 그 내용이 협회 출입기자단에 전달되는 식이다. 경기 하루 전에 예정된 대로 생중계는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1970 멕시코월드컵에서 처음으로 생중계가 이뤄진 이후로, 우리나라에서는 1985년 3월 네팔 현지의 열악한 환경 탓에 월드컵 아시아 예선 원정경기 생중계가 무산된 뒤로 34년간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20세기형 ‘깜깜이 경기’가 21세기에 ‘한반도 더비’로 펼쳐진 셈이다.

대표팀 선수단 25명과 대한축구협회 실무진 30명이 평양에 도착했던 지난 14일의 상황도 하루를 넘겨서야 우리나라로 전해졌다. 대표팀은 당일 오후 4시10분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 오후 7시55분부터 10분간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짧은 기자회견에서 나온 발언조차 5시간여 뒤인 이날 오전 0시30분쯤 대한축구협회 직원에게 전달됐다.

한국 축구팬은 물론 외신도 남북의 평양 경기에 조소를 보내고 있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이날 경기를 앞두고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더비매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북한에 있는 외국인 관광객도 이 경기를 관전하지 못한다”고 보도했다.

대한축구협회와 통일부·문화체육관광부는 오는 17일에 귀국할 예정인 대표팀 선수단과 실무진을 통해 경기 영상을 받아 지연 중계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 확정 사안은 아니어서 불발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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