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엇 게임즈 제공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에 참전 중인 담원 게이밍 탑라이너 ‘너구리’ 장하권의 룬 특성 선택이 화제다. 챔피언 불문 ‘도벽’을 고집 중이다. 11세트 중 8세트에서 골랐다. 블라디미르로도, 제이스로도 도벽이다. 맞라이너가 ‘임팩트’ 정언영(팀 리퀴드)이든, ‘더샤이’ 강승록(인빅터스 게이밍)이든 그런 건 중요치 않다. 진정한 대도는 초가집과 대감집을 가리지 않는다.

장하권은 과감한 플레이를 선호한다. 국내 해설진은 그를 용맹하면서도 단순한 ‘여포’에 비유하곤 했다. 그래서 담원이 팀 리퀴드에 졌을 때, 일부 팬들은 장하권의 고집스러운 룬 선택이 패인이었다고 분석했다. 혹자는 오만하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는 보기보다 치밀한 사람이다. 화끈한 라인전과 달리 차분하게 아이템 연구를 즐기는 타입이다. 룬 특성도 마찬가지다.

룬 특성을 대하는 자세는 프로게이머마다 다르다. 가령 경기 후 인터뷰에서 “오늘은 왜 사일러스로 정복자가 아닌 감전을 선택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연습 때 써보니까 감전이 더 좋았어요”라고 답하는 선수가 있다. 자신의 뛰어난 감에 의존하는 경우다.

반면 스킬의 마나 소모량 등을 거론하며 차근차근 설명하는 이론파 선수들도 있다. ‘바이퍼’ 박도현(그리핀)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루시안으로 ‘타는 불길(W)’ 선 마스터 빌드를 개발, OP 취급을 받던 바텀 카시오페아를 라인전에서 이겼을 때 “다음 패치에서 W의 마나 소모량이 늘어난다. 즉 지금은 라이엇의 의도보다 좋은 성능을 내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고 했다.

장하권은 후자 쪽에 가깝다. 지난 9월, 담원 숙소에서 국민일보와 만난 그는 만나보고 싶은 탑라이너 중 하나로 ‘플랑드레’ 리 쉬안쥔(리닝 e스포츠)을 지목했다. ‘LoL 프로 리그(LPL)’를 보지 않는 팬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이다. ‘플랑드레’는 국제 대회 출전 경험은커녕 자국 리그 경험도 없다.

장하권이 ‘플랑드레’에게 깊은 감명을 받은 건 그가 독특한 아이템 트리를 자주 선보였기 때문이다. 장하권은 “‘플랑드레’는 게임을 보는 눈이나 아이템 트리가 특이하다. 연구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예전에 쉔으로 도벽을 들고, 이후엔 대미지 아이템을 가더라. 깜짝 놀랐다”고 했다. 동류에게 끌렸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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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레 도벽 룬이 화두에 올랐다. 기자가 장하권의 도벽 카밀에 감명받아 솔로 랭크에서 따라 했다가 본전도 못 챙겼으며, 팀원들에게 비난만 받았다고 토로하자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도벽 룬을 변호하기 시작했다. 챔피언의 룬과 아이템 트리를 설명할 때 장하권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반짝인다.

당시 그는 “이론적으로 도벽을 들고 죽지 않으면 돈을 더 많이 쌓아서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장하권은 그때부터 도벽이 다른 룬보다 나은 성능을 발휘한다고 계산을 끝마친 상태였다.

“룬의 경우 하나씩 다 보고, 상대마다 조금씩 변화를 주는 걸 좋아한다. 저는 특히 도벽 룬을 좋아한다. 이론적으로 도벽을 들고 죽지 않으면 돈을 더 많이 쌓아서 이길 수 있다. 정복자와 도벽이 비슷하다. 정복자는 룬으로 상대를 때리고, 도벽은 돈으로 때리는 거다.”

“대회나 개인방송을 관전할 때는 룬과 아이템을 많이 본다. 괜찮다 싶은 건 직접 연구한다. 초반 라인전이 어려운 챔피언의 경우, 살짝 방식을 바꾸면 플레이가 편할 때가 있다. 도벽은 ‘이대로만 가면 된다’는 심리적인 부분에서 영향이 있다.”

“요즘 가장 큰 고민은 블라디미르의 룬 특성이다. 도벽이 좋을까, ‘난입’이 좋을까. 도벽을 들면 이동속도를 올려주는 ‘유목민의 메달’을 사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마법공학 초기형 벨트-01’을 가는 게 맞는가도 고민이다. 원래 ‘라바돈의 죽음모자’와 ‘주문매듭 구슬’을 바로 가는 아이템 트리를 선호했는데 다른 선수들 경기를 관전해보면 벨트도 좋아 보인다.”

“카밀도 고민이다. 선 ‘굶주린 히드라’ 아이템 트리가 괜찮아 보인다. 원래 도벽 카밀은 ‘도란의 검’ 2개를 산 뒤 ‘삼위일체’를 구매하는 게 정석이다. 안정감은 있는데 도란의 검 스택이 쌓일수록 후반 기대치가 낮아진다. ‘부패의 물약’으로 시작한 뒤 굶주린 히드라를 가는 건 어떨까 싶다. ‘스타크래프트’에서 3해처리 전략, 4해처리 전략처럼 파밍을 빨리하고 정글을 빼먹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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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장하권은 유성 라이즈로 전 세계 탑라이너들에게 영감을 줬다. 라이즈도 그가 연구하기를 좋아하는 챔피언 중 하나다. 눈썰미 좋은 팬들은 장하권이 부 특성으로 ‘지배’만을 선택하다가, 어느 순간부턴가 지배와 ‘영감’을 번갈아 고르고 있다는 걸 알아챘을 것이다. 이 또한 치밀한 사고의 결과다.

“대회에서 ‘유칼’ 손우현(아프리카 프릭스)이 ‘마나수정’에 ‘충전형 물약’으로 게임을 시작하고, ‘여신의 눈물’까지만 올린 뒤 ‘대천사의 지팡이’가 아닌 ‘영겁의 지팡이’를 가더라. 처음 봤을 때는 ‘왜 대천사를 안 가?’하고 부정적으로 봤는데 직접 해보니 너무 좋더라.”

“라이즈는 원래 지배 룬의 ‘피의 맛’과 ‘굶주린 사냥꾼’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체력 흡혈이 된다. 손우현은 영감 룬의 ‘비스킷 배달’로 초반에 어려운 라인전을 버텨내더라. 영겁의 지팡이를 사면 탱킹력도 늘어난다. 부족한 체력 흡혈도 영겁의 지팡이가 가진 패시브 효과로 얻어낼 수 있다. 이런 거 하나하나가 챔피언을 쓸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르는 것 같다.”

그는 생각보다 치밀하고 교활하다. 도벽 시리즈는 또 다른 너구리표 히트작이 될 가능성이 있다. 담원의 롤드컵 성적에 달렸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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