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7월 7일 도쿄 인근 후나바시 거리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및 참모조직인 총리관저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인 대(對) 한국 수출규제를 주도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들은 “싸움은 처음에 어떻게 때릴지가 중요하다”며 신중론을 일축하기도 했다. 또 ‘자유무역’ 가치 훼손 논란을 피하기 위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이후로 수출규제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는 수출규제가 자유무역에 반한다는 사실을 미리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해석돼 논란이 예상된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지난 6월 아베 총리관저에서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조치로 반도체·디스플레이 관련 주요 소재 3개 품목을 수출규제하기로 한 결정이 이뤄졌다고 18일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지난 6월 20일 오후 소수 고위관계자만 소집해 회의를 주재했다. 이 자리에는 후루야 가즈유키 관방부장관보, 외무성의 아키바 다케오 사무차관, 가나스기 겐지 당시 아시아대양주국장, 경제산업성의 시마다 다케시 당시 사무차관 등 소수만 모였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이후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는데 이들은 일본 기업에 큰 영향을 주지 않고 한국 측에 명확한 불만 표시를 전달할 수 있는 방법으로 수출규제 강화를 결정했다고 한다.

이 결정은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졌다. 당장 8일 후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가 다가오고 있었던 탓이다. 아사히는 “총리는 의장으로서 자유무역의 중요성을 강조한 정상선언을 해야했다”며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강화를 미리 발표할 경우 자유무역과의 모순이 있을 수 있다”고 전했다.

이는 일본 측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강화가 자유무역에 저해된다는 사실을 미리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논란이 예상된다.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의 세계무역기구(WTO) 제소에 대해 ‘대(對) 한국 수출규제 강화’ 조치는 WTO 협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아사히는 수출규제 강화 배경에는 그동안의 한·일관계에서 일본 측의 불만이 쌓여 있었다고 전했다. 한국 대법원 판결 이후 일본 기업의 자산이 매각될 수 있다는 정부 내 위기감, 박근혜정부 당시 피해자를 배제한 채 합의했던 12·28 위안부 협상 폐기와 화해치유재단의 해산, 초계기 레이더 논란 등이 쌓였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대항 조치를 검토했지만 파장을 우려해 신중론이 대세를 차지했다. 하지만 아베 정권의 고위관계자들은 각료들의 신중론에 대해 “한국은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을 것”이라며 일축했다. 그러면서 “싸움은 첫 대결에서 어떻게 때리느냐가 중요하다. 국내 여론은 따라오게 돼있다”며 수출규제 강화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을 주장했다.

한국에 대한 강경자세는 정권에 도움이 된다는 계산도 있었다. 아베 총리 측근들은 “한·일 문제가 지지율을 끌어올렸다”며 “한·일 양측의 여론이 ‘좀 더 (강하게) 하라’고 가열되고 있다”고 말했다고 아사히는 전했다. 또 아베 정권은 7월 4일 참의원 선거 공시가 예정된 가운데 한국에 대한 일본인의 불만 고조 등 여론을 의식하고 있었다고 아사히는 진단했다. 결국 경제산업성은 지난 7월 1일 대한 수출규제 강화를 발표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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