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청주에서 화성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수감 생활을 한 윤모씨가 인터뷰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사 과정은 어땠나.
“경찰서에서 조사받으면서 쪼그려 뛰기를 하라고 했다.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했기 때문에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한번 하고 넘어졌다. 왜 쪼그려 뛰기를 시키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형사들이 발로 걷어찼다. 현장에는 최 형사와 장 형사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었다. 당시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3일간 조사를 받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어떻게 자백을 했나.
“잠을 못 자면 정신이 혼미해진다. 경찰은 5시간 만에 조사를 끝냈다고 하지만, 내 기억으로는 3일 정도 받았다. 어떻게 조사를 받았는지 경황도 없었고, 지장을 찍으라고 해서 찍었다. 그것이 (자백으로) 인정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초등학교 졸업을 못 했는데, 당시에는 글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였다.”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검거돼 20년을 복역한 윤모(당시 22세)씨가 21일 청주에서 취재진과 만나 조사과정에서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말했다.

“사건 당시 강압 수사를 한 형사들이 지금이라도 나와서 진정성 있게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며 “나는 명예를 찾고 싶다. 인간 된 도리로 사과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이춘재가 8차 사건이 자신의 범행이라고 시인하면서 윤씨는 현재 변호인의 도움을 받아 재심을 준비하고 있다.

윤씨는 “(교도소에서) 교도관들에게 물어봤는데, 남아 있는 서류나 정황상 사건을 뒤집을 만한 증거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재심을) 포기했다”며 “이춘재에 대한 보도가 나왔을 때 희망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그전까지는 그냥 조용히 살려고 했다”고 회상했다.

화성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박모(당시 13세)양의 집에서 박양이 성폭행당하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당시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에 대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방사성동위원소 감별법으로 체모에 포함된 중금속 성분을 분석했고, 경찰은 국과수의 분석 결과를 토대로 윤씨를 범인으로 검거했다.

윤씨는 재판에 넘겨져 무기징역을 확정받아 복역하던 중 감형받아 수감 20년 만인 2009년 가석방됐다.

수감 생활에 대해 윤씨는 “종교의 힘으로 버텼다. 교도관, 교화위원들의 덕을 크게 봤다”면서 “그 사람들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여기 없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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