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우아한 가'. MBN 제공


속이고 속는 권력 싸움, 죽이고 죽는 폭력의 이면을 어둡게 그려내는 누아르는 남성들을 위한 장르로 여겨져 왔다. 극 주요 인물들도 남성 인물들 위주로 꾸려지곤 했는데, 최근 여성 캐릭터를 앞세운 누아르물이 속속 안방을 찾으며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17일 종영한 ‘우아한 가’(MBN)는 재벌가의 범죄를 관리하는 ‘오너리스크 관리팀’이란 독특한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내 인기를 끌었다. 뉴스에서 봐왔던 오너 일가의 일탈을 꼬집는 설정인 셈인데, 이들은 음주운전 등 재벌의 각종 범죄를 갖은 방법으로 감춘다.

시청률이 2%(닐슨코리아)대로 시작해 8%대까지 올랐다. 빠른 전개와 호연 덕분이기도 했지만, 리스크관리팀 수장 한제국(배종옥)이란 인물의 역할이 컸다. 날렵한 정장을 차려입고 특유의 카리스마로 정·재계를 뒤에서 주무르는 한제국의 매력은 극 흥행의 끌차가 됐다.

야욕이 들끓는 한제국은 애초 남성 인물로 그려질 계획이었으나, 발상을 뒤집어 배종옥이 캐스팅됐다. 배종옥은 최근 인터뷰에서 “한제국을 여배우가 했다는 것만으로도 극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것 같다”며 놀라워했다. 그러면서 “남자가 가질 수 없는 부드러움 속 강렬한 느낌을 주고자 했다”고 전했다.


드라마 '시크릿 부티크'. SBS 제공


지난달 18일 첫발을 뗀 ‘시크릿 부티크’(SBS)는 아예 레이디스 누아르라는 장르를 내걸었다. 재벌 데오 그룹을 두고 펼쳐지는 여성들 사이의 권력 암투를 그린 작품으로 ‘동백꽃 필 무렵’(KBS2) 등 쟁쟁한 작품들 사이에서 5%대로 선전 중이다.

변호사 윤선우(김재영) 등 남성 인물들은 대부분 여성의 보조적 역할로 그려진다는 게 특징이다. 대신 강렬한 색깔의 여성 캐릭터들이 극을 가득 메우는데, 데오 그룹 총수 김여옥(장미희), 그룹 장녀이자 제니장(김선아)과 대립하는 위예남(박희본) 등이 그렇다.

그중 김선아가 맡은 제니장이란 캐릭터는 단연 눈에 띈다. 그녀는 고아원 출신으로 목욕탕 세신사에서 재벌가 해결사이자 비선 실세로까지 거듭난 인물. 출생의 비밀을 간직한 그녀는 그룹 전체를 삼키려는 계획을 차근차근 실현해나간다.

그간 여성 누아르가 없었던 건 아니다. 염정아 주연 ‘로열 패밀리’(MBC·2011), 영화 ‘차이나타운’(2014) 등이 있었지만, 이따금 얼굴을 비추는 데 그치곤 했다. 전문가들은 잇따른 여성 누아르의 등장 배경을 최근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해석했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남녀 역할 전복은 주 시청자층인 여성에게 매력적으로 어필하는 방법이면서, 최근 여성들을 본격적으로 비추기 시작한 사회 흐름의 반영이기도 하다”며 “능동적으로 욕망을 펼쳐나가는 인물을 여성이 연기하면 서사와 캐릭터 해석도 다채로워질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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