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부산경찰청

장기 미제사건이었던 부산 태양다방 여성 종업원 살인사건에 대한 재수사 끝에 15년 만에 유력 용의자를 붙잡았으나 대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강도살인으로 기소된 양모(48)씨 상고심 선고 공판에서 검찰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이 선고한 무죄를 확정했다고 22일 밝혔다.

사진=부산경찰청

한일 월드컵이 한창이던 지난 2002년 5월 21일 부산 태양다방에서 퇴근하던 여성 종업원 A씨(당시 22)가 실종됐다. 밤 10시에 다방을 나서 11시경 지인과 통화를 한 것이 마지막 행적이었다. 그는 실종 9일 뒤 인근 바다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상태는 끔찍했다. 청 테이프로 결박당한 채 검은 비닐봉지에 6번, 마대자루에 2번 싸여있었다.

경찰은 대대적인 수사를 시작했다. 실종 이튿 날 20대 중반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A씨 통장에서 돈을 인출해가는 장면을 확인했다. 남성은 대낮에 A씨 통장에 있던 296만원 모두를 대범하게 뽑았다. 그것도 A씨가 일했던 태양다방과 걸어서 불과 1분 거리에 있던 은행이었다.

경찰이 남자의 신원파악에 주력하는 동안 A씨의 돈을 노리는 수상한 인물이 또 포착됐다. 다방과 멀리 떨어진 은행에서 여성 두 명이 돈을 인출해간 것이다. 당시 CCTV영상에는 두 여성이 A씨의 신분증을 내밀며 통장 비밀번호를 바꾸는 모습이 담겨있다.

사건은 그렇게 해결되지 않은 채 10여 년간을 미제로 남아있었다. 2015년 9월 부산지방경찰청이 미제사건 26건을 전담하는 미제사건전담수사팀을 발족하면서 재수사가 시작됐다. 이른바 ‘태완이 법’이 국회를 통과해 살인죄 공소시효가 사라진지 두 달 만이었다. 이 사건은 미제 26건 중에서도 범인 검거 가능성이 높은 축에 속했다.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모습이 담긴 CCTV까지 확보된 상태였다.

수사팀은 2년여 수사 끝에 지난 2017년 유력한 용의자 양모(48)씨 검거에 성공했다. 돈을 인출한 여성 2명을 고용한 인물도 양씨인 것으로 추정됐다. 그는 앞서 성매매와 부녀자 강도 강간으로 2003년부터 2012년까지 징역을 살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양씨는 경찰에 체포되면서 “영장이 있느냐”고 묻는 등 태연한 모습을 보였다. 경찰이 압수한 스마트폰에서는 ‘살인공소시효’ ‘살인공소시효 폐지’ 등을 검색했던 기록이 나왔다. 경찰은 그를 이 사건의 범인이라고 확신했다.

SBS화면캡처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1심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배심원 9명 중 7명이 무기징역과 사형의견을 낸 것이 영향을 미쳤다. 2심도 원심 선고를 유지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부산고법으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부산고법은 지난 7월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으나 유죄를 증명할 간접증거는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1, 2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양씨 동거녀의 진술이었다. 시신이 든 마대를 함께 옮겼다고 자백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동거녀 진술이 구체적이지 않고 수사기관 정보를 자신의 기억으로 재구성했을 가능성이 있어 진술의 신빙성이 부족하다”며 “동거녀 진술이 바뀌었는데 경찰이 영상녹화를 하지 않아 어떤 과정을 거쳐 변경된 건지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대법원에 재상고했지만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양씨 측은 “살인의 유일한 증거인 동거인 진술은 신빙성이 없으며 경찰 지시나 매수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설사 진실이라도 강도살인의 유죄 증거가 될 수 없다”며 “피해자 실종 당일 같이 술을 마신 제3의 남성이 범인일 가능성이 있으며 당시 피고인이 은행으로부터 500만원을 빌린 것 외에는 별다른 채무 독촉을 받지도 않아 일면식 없는 피해자를 살해할 동기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양씨 역시 최후진술에서 “사람을 살해하지 않았고 피해자와 연관도 없다. 길에서 우연히 가방을 주웠고 또 우연히 통장 비밀번호를 맞췄다”며 “제2의 피해자를 만들지 않도록 재판부가 현명한 판단을 해달라”고 말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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