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시정연설에서 ‘정시 비중 상향을 포함한 입시제도 개편’을 공식 거론하면서 그동안 정시 확대를 검토하지 않겠다고 해온 교육부는 제도 전반을 다시 살펴봐야 하는 입장이 됐다.

특히 지금까지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추진해온 교육 정책 전반에도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우선 2025년 전면 도입 예정인 고교학점제는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고교학점제의 핵심은 학생에게 다양한 과목 선택권을 주는 것이다. 수능의 영향력을 자격고사 수준으로 줄여야 가능한 일이다. 수능이 영향력이 강하면 학생 선택권보다 수능에 유리한 과목으로 학교 교육과정이 짜일 수밖에 없다.

여당 요구대로 대입에서 정시 비중이 50% 이상 확대되면 고교학점제는 사실상 ‘껍데기’만 남을 수 있다. 정부가 50%로 선을 긋더라도 수시모집에서 뽑지 못하고 정시로 이월되는 인원까지 포함하면 실질적인 정시 비율은 55% 안팎이 된다. 절반이 넘어가는 비율이다. 수험생 입장에선 고1 때 내신을 망쳤거나, 학점 따기 어렵다고 판단이 들면 곧바로 ‘수능 모드’로 전환하면 된다.

과거 정시 비중이 수시보다 높았을 때처럼 EBS 수능 교재가 고교 교실을 점령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문재인정부가 주장해온 고교 교육 정상화는 물 건너가는 일이다. 대입 제도의 변화는 고입과 중학교 교실에도 영향을 끼친다.

교육계 관계자는 “내년 선거를 앞두고 여당 입장에서 60~70%에 달하는 정시 확대 여론을 외면하긴 어려웠을 것”이라며 “대통령 한마디에 또다시 대입이 흔들리는 폐단이 문재인정부에서도 반복됐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과 학부모 몫”이라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정시 확대를 공식화하자 교육부는 충격에 휩싸였다. 한 교육부 관료는 “오늘 아침에 들었다. 충격적이다”고 말했다. 결국 교육부는 거수기였다는 자조도 나온다. 교육부 안팎에선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정시 확대론을 막고 버티고 있었는데 결국 조국 후폭풍을 감당하지 못했다”는 분석도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 특혜 입시 의혹이 불거진 이후 여야 정치권에서 정시 확대론이 고개 들자 교육부 관계자들은 “직을 걸고 정사 확대는 막겠다”고 말해왔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1일 동남아 순방을 나가며 ‘대입제도 전반 재검토’ 지시를 내렸을 당시에도 입장 변화는 없었다. 대통령의 진짜 의중은 정시 확대가 아니란 얘기였다.

교육부는 정시 확대를 막기 위해 총력전을 폈지만 역부족이었다. 극약처방도 내놨지만 정시 확대론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먼저 학생부종합전형에서 비교과영역을 전면 폐지하는 방안을 예고했다. 비교과영역이란 국어 수학 영어 같은 교과 성적을 제외한 자율활동, 동아리활동, 봉사활동, 진로활동 등을 말한다. 아예 집안 배경이 대입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한다는 파격적인 방안이었다. 학종 비중이 높은 서울 주요 13개 대학에 대한 실태조사에 들어가기도 했다.

또 다른 극약처방으로는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외국어고, 국제고 폐지가 꼽힌다. 이들 학교를 2025년 3월 일반고로 일괄 전환하는 내용이다. 당초 교육부는 교육청 평가를 통한 단계적 전환 방침이 확고했지만 당과 청와대에 양보했다는 관측이다. 정부와 여당은 상당한 폭발력을 가지고 정시 확대 여론을 덮어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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