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일본 수출규제’ 관련 보고서를 한달 동안 홈페이지에서 전량 누락시킨 사실이 확인됐다. 한은이 정부 눈치를 보고 정책에 민감한 보고서를 비공개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독립성’ 논란도 불거진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2일 한은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3년간 연도별 국외사무소의 추진 업무 및 성과’에 따르면 한은 동경사무소는 지난 8월 총 8건의 일본 관련 보고서를 펴냈다. 다만 이를 홈페이지에 게시하지 않았다. 8건 가운데 4건은 일본 수출규제 관련 보고서다.

이 보고서들은 일본 수출규제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지난 8월 7일자 보고서는 “(수출규제 수준이) 일본 경제산업성의 실무적, 자의적 기준으로 조정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한국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평가했다. 같은 달 13일자 보고서는 “일본의 산케이신문이 일본에 수출하는 한국 기업의 손실 가능성을 지적했다”고 전했다. 이어 21일자 보고서엔 “한·일 간 종속, 분업관계가 점차 탈피되면서 한·일 갈등이 쉽게 해결되기 어려울 전망이며, (이는) 반도체 관련 기업 주가에 불안정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8월 발간된 한국은행 동경사무소 보고서가 홈페이지에 게시되지 않은 모습. 한국은행 홈페이지 캡처.

‘보고서 누락’을 두고 한은 관계자는 “보고서 작성 당시 수출규제 내용이 이미 언론에 자세히 보도돼 있었던 반면 보고서 내용은 워낙 압축돼 있다 보니 굳이 홈페이지에 올릴 필요성을 못 느꼈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보고서 누락과 관련해 “다분히 의도적 조치”라며 “한국은행법에 따라 한은은 업무 수행 및 기관 운영에 있어 공공성과 투명성을 확보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외부 눈치를 보며 책임을 회피하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한국은행 홈페이지에 누락된 8월 동경사무소 보고서 목록.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제공.

한은은 정부 정책 기조와 일치하는 보고서의 경우 보도자료로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지난달 22일 한은 해외경제포커스에 수록된 보고서는 정부의 신남방 정책을 지원사격하는 내용이었다. 지난달 16일에는 ‘새로운 재정지출 식별방법을 이용한 우리나라의 정부지출 승수효과 추정’ 보고서도 냈다. 골자는 정부지출을 1조원 늘리면 5년간 국내총생산(GDP)가 약 1조2700억원 증가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학계 관계자는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한은이 정부 재정정책을 지지하는 보고서를 내거나, 경제성장률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 표시를 하는 걸 보면 한은 독립성에 의문을 표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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