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 하나 없는 한 중학교 운동부 숙소의 침실. 군대 내무반과 상당히 흡사하게 만들어져 있다. 국가인권위원회 제공

“여자친구 만나는 것을 감독에게 들켰더니 삭발을 당했습니다.”(A고교 남자 축구부원)
“선배들이 제 물건을 만지기만 해도 관등성명을 외치고 인사를 해야 해요.”(B고교 여자 육상부원)

중·고교 운동부 합숙소가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3일 “지난 6월부터 이달 초까지 16개 중·고교 운동부 합숙소를 조사한 결과 학생 선수들은 혹독한 규율·통제 아래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 결과는 교육부의 지난 6월 ‘학교 운동부 실태 점검’ 자료를 바탕으로 인권위 직원들이 현장에서 실사와 심층 인터뷰 등을 진행해 도출됐다.

인권위가 밝힌 운동부 합숙소의 운영 실태는 충격적이다. C중학교 축구부의 3학년생들은 툭하면 숙소에 후배들을 한 줄로 세워놓고 뺨과 가슴을 치거나 머리를 바닥에 박게 했다. 욕설하며 발로 밟고 가슴에 피멍이 들 정도로 많이 때린 적도 있다. 샤워를 늦게 한다거나 웃고 떠든다는 이유에서였다. 신입생 교육을 똑바로 하지 않는다며 2학년에게 후배를 때리라고 종용하기도 했다. 선배의 근육 마사지나 빨래 같은 잡일은 후배 몫이었다.

피해 학생들은 보복이 두려워 7개월을 넘게 참다가 상담교사에게 신고했다. 하지만 학교는 가해 학생 한 명만 전학 처리하는 것으로 매듭지었다. 나머지 가해자는 여전히 같은 축구부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학 간 가해자는 프로 축구팀이 운영하는 유소년팀에서 축구를 계속하고 있다.

동성 간 성폭력도 벌어진다. D고교 축구부 숙소에서는 올해 초까지 3학년 학생이 1,2학년 후배들에게 성적인 행위를 요구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 학생은 “가해자가 한 달에 한 번씩 XX를 애무해 달라고 했다. 단둘이 있건, 여러 사람과 함께 있건 요구는 계속됐다”고 토로했다.

인권위는 지도자의 낮은 인권 감수성을 합숙소에서 폭력적인 문화가 자리 잡게 하는 요인으로 파악했다. C중학교 축구부 감독은 인권위 조사에서 “일반 학생들은 폭력이나 괴롭힘이 더 심각하다. 운동부 학생들은 그 정도는 아니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를 보였다.


운동부 합숙소에서 지도자와 선배들은 성과를 핑계로 다른 선수의 생활을 세세하게 감시하고 통제했다. 후배 선수들은 윗사람의 질문에 관등 성명을 대야 했다. 주중에는 휴대전화를 압수당했다. 이성 교제가 적발될 시 삭발을 강요하거나 샴푸 꼭지를 오른쪽 방향으로 정리하라는 비상식적인 규율도 있었다.

숙소 환경은 대체로 열악했다. D고교 2학년 축구부원 10명은 물도 잘 나오지 않는 좁은 옥탑방에서 함께 생활해야 했다. 침대 하나 없이 군대 내무반처럼 만들어진 나무 바닥에서 합숙하는 곳도 있었다. 소방·안전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E고교 숙소는 스프링클러와 비상구, 대피로가 제대로 확보돼 있지 않았다.

인권위에 따르면 체육 중·고교를 제외하고 운동부 기숙사를 운영하는 전국의 초·중·고교는 380여곳이다. 이 중 157곳(41%)은 가까이 사는 학생들까지 불러 상시로 합숙훈련을 하고 있었다. 사실상 합숙을 강제하는 것이다.

인권위는 학생들에게 합숙소 거주 여부를 선택할 수 있게 하고 일상생활에서 기본권을 보장하라고 제언했다. 구정화 경인교대 교수는 “학생 선수와 지도자의 인권 감수성을 길러줄 수 있는 기초적인 인권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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