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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일본에서 선교사로 헌신 이성주 목사 “내 삶의 원동력은 예수”

신천서부장로교회 출신으로 1969년 파송 2002년 돌아와


이성주(88) 목사는 김익두 목사가 시무한 황해도 신천 서부장로교회 출신으로 지난 33년간 일본 선교사로 헌신했다. 최근 서울 요나3일영성원에서 만난 그는 “한국에서든 일본에서든 내 삶의 원동력은 예수였다”고 고백했다.

이 목사는 5세 때 철원으로 갔다가 한국전쟁 전인 1947년에 서울로 왔다. 1950년 연희전문대 철학과에 입학했지만 졸업은 못 했다. 한국전쟁 때는 미군 야전병원 군무원으로 일했으며 이후 강원도 홍천군 팔렬중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감신대에서 신학을 공부해 목회자가 됐다.

첫 목회지는 강원도 영월 마차교회였다. 그곳은 ‘탄광 교회’로 당시 산업 전도의 현장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이 목사는 미국 세인트폴신학교에서 공부하고 1969년 기독교대한감리회의 동부연회 파송으로 일본에 간다.

그는 “3년만 예상하고 일본에 첫발을 디뎠는데 평생을 살게 됐다”고 했다. 이 목사는 처음 삿포로교회에 정착해 7년, 오키나와교회에서 3년, 후쿠오카교회에서 17년, 은퇴 전 미시와교회까지 총 33년을 지냈다. 그는 2002년에 일본을 떠났다.

이 목사는 ‘아주 특별한 부르심’의 저자이자 요나3일영성원장인 이에스더 목사의 은인이기도 하다. 이성주 목사는 에스더 목사가 1989년 즈음 대구 근교 달성군의 1만6천㎡(5000여 평)를 매입하기 위해 기도할 때 교회에 초청, 메시지를 전하게 했다. 광고를 통해 상황을 알렸다. 이 사정을 들은 한 장로가 헌신하면서 기도원을 개원하게 된다.

책에 나오는 이성주 목사의 막내딸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이 목사의 당시 5세 딸이 일본 유치원을 다녔는데 하루는 일본 아이들이 일본말을 잘 못 한다고 ‘빠가’, 즉 바보라고 놀렸다. 그때 딸은 우는 것이 아니라 정색을 하면서 “너희는 한국말을 알아?”라고 반격했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너희는 영어 알아? 나는 한국말도 하고 영어도 한단 말이야. 바보는 내가 아니라 바로 너희들이야”라고 소리쳤다.

이 목사는 “이 같은 자의식은 가정교육 덕분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매일 식탁에서 아이들과 대화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심어줬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때마다 파견식을 했어요. 아이들에게 먼저 묻지요. ‘너는 누구냐?’ 그러면 아이들은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 위대하다’고 답을 합니다. 이어 ‘너는 어디에 사냐’고 물어요. 그러면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에 산다’고 답해요. 그다음 ‘지금 너희는 어디를 가느냐’고 하면 ‘나는 세상으로 나간다’고 답하고 ‘거기서 뭐를 하려 하느냐’고 하면 ‘나는 새로운 지구 세상을 건설하러 나간다’고 하죠. 그러고 나서 내가 축복기도를 해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들을 보낸다.’”

이런 파견식을 매일 8년간 했다. 이 목사는 아이들이 학교를 가도 하나님을 위해 간다는 것을 가르치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섬기는 목사로도 알려져 있었다. 특히 아내가 한국에서 온 학생, 교수들에게 먹을 것 대접하기를 즐겼다. 그래서 예수 믿은 이들도 많았다. “한국으로 돌아간 이들이 일본에서 사모님이 끓여주신 김치찌개를 먹고 싶어서 교회를 나갔다고 편지를 보내와요. 한국에 와서 제대로 예수 믿고 세례받고 본격적으로 신앙생활하고 있다고 말이에요.”

냉장고에 음식이 있을 시간이 없었다고 했다. 모두 일본에 온 한국 유학생들에게 주느라고 그랬다고 했다. “먹을 것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을 위로해주고 싶었어요. 일본 사회에서 많은 차별을 받는데 절대로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메시지를 주고자 했어요.”

이 목사는 이에스더 목사가 사역하는 홀사모선교회를 돕는 중요 후원자이기도 하다. 미국 시애틀에 사는 지금은 한인 은퇴목회자들을 돕는 사역을 한다.

이 목사는 나이에 비교해 상당히 건강했다. 그 비결을 묻자 “온종일 기도하고 종일 찬송하고 기쁘고 즐거우니까 그런 것 같다”며 “그 힘의 원천이 예수”라고 말했다. 글·사진=

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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