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바닥론이 슬슬 고개를 들면서 ‘잠자는 돈’이 꿈틀하는 모양새다. 대표적 안전자산인 금과 채권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 미·중 무역협상 타결 기대감에 미국을 중심으로 한 주요국 증시는 훈풍이 불고 있다. 투자자들이 위험자산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시중 부동자금이 사상 최대인 1472조원에 달하는 가운데 ‘돈맥경화’가 풀리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하지만 여전히 불확실성이 잔존하는 상황에서, 일시적 조정 국면 가능성이 크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8일 한국거래소(KRX) 금시장에 따르면 g당 금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1.62%(900원) 하락한 5만4810원에 마감했다. g당 5만4000원대로 떨어진 것은 지난 8월 1일(5만4130원) 이후 3개월여 만이다. 금 값은 지난 8월13일 g당 6만2230원까지 치솟으며 연초(4만6240원) 대비 30% 넘게 상승하면서 사상 최고점을 찍기도 했다.

채권 금리는 최근 오름세가 뚜렷하다. 지난 8월 19일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사상 최저치인 1.093%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이날 1.579%에 마감했다. 저점 대비 0.486 %포인트 오른 수치다. 채권 금리가 올랐다는 건 시장 약세로 채권 값이 내려갔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현상을 ‘경기 불확실성 완화 → 위험자산 선호 심리 회복 → 안전자산 가격 하락’ 수순으로 본다. 불확실성이 걷어진 건 미·중 무역협상 진척이 가장 크다. 1년 넘게 이어지던 양국의 무역갈등은 일단 일부 관세를 철회키로 하면서 ‘스몰딜’ 정도는 성사시킨 분위기다. 영국의 ‘노딜 브렉시트’(협상없는 영국의 EU 탈퇴) 우려도 다소 잦아들었다.

증권가 중심으로는 ‘경기 바닥론’이 흘러나온다. 황찬영 맥쿼리증권 한국 대표이사는 지난 7일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한국 경제는 중요한 변곡점에 도달했다. 경기 순환 주기상 올해 4분기에는 바닥을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KTB투자증권도 최근 보고서를 내고 “국내경제의 저점 통과가 근접했다는 조짐이 확인된다. 내년 경제성장률 반등이 유력하다”고 내다봤다.

최근 공개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도 ‘반도체 경기 저점론’이 제기됐다. 한은 관계자는 최근 공개된 금통위 10월 의사록에서 “적어도 반도체 가격의 경우 다른 충격이 없다면 지금이 저점에 근접한 수준으로 보인다. 향후 가격이 추가 하락한다고 해도 그 폭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국의 ‘수출 효자’인 반도체 부문 회복은 성장률 회복과 직결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경계를 늦추기에는 이르다고 지적한다. 경기 저점을 통과했다기보다는 일시적 조정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특히 불확실성은 여전히 잔존하고 있다. 미·중 무역협상은 언제든지 다시 충돌할 수 있는 사안이다. 영국의 노딜 브렉시트 우려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 흐름이 이어지는 한, 구조적 저성장 국면에서 당장 헤어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임혜윤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미·중 무역협상 진전, 글로벌 경기 반등과 수요 확대 등 대외 환경 개선에 따른 민간 부문 회복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반등 폭과 성장의 지속성에 대한 우려는 이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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