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결이 국제법 위반이라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주장을, 이낙연 국무총리가 점잖지만 단호하게 반박했다.


이 총리는 지난달 24일 도쿄에서 아베 총리와 만나 “한국도 1965년 한일기본관계조약과 청구권협정을 존중하고 준수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원 판결에 대한 양국의 근본적인 입장차를 확인한 셈이다.

그러나 외교협의를 통해 갈등을 해소하려는 양국의 의지도 드러났다. 지난 4일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매우 우호적이며 진지한” 분위기에서 환담했다. 양 정상은 대화를 통한 현안 해결원칙을 재확인했다. 아베 총리는 양국 문제에 대한 일본의 원칙적 입장을 확고하게 전달했다 한다. 근본적인 입장차는 여전하나 대화와 협의를 통해 외교적으로 해결하려는 양국 입장이 확인됐다.

일본은 청구권협정으로 강제동원 피해자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 문제도 해결됐다 하고, 한국은 해결되지 않았다 한다. 일본 정부는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의 존재는 인정하나,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으니 소멸했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무상자금에 정치적 차원의 강제동원 피해보상이 포함됐다는 점은 인정하나, 피해자 개인의 법적 배상청구권은 여전히 살아있다는 것이다.

양국의 청구권협정 해석을 모두 포용하는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여러 방안이 대두했다. 필자는 ‘일본기업 배상, 한국정부 보전’ 방안을 제시했었다. 이 방안에 대해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곤란하다는 의견이 있다.
그렇지 않다. 일본 기업의 배상이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는 결과로 되지 않는다. 일본 기업의 강제동원 불법행위를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도 대법원 판결이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했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의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고 정치적 차원이지만 자금 제공을 통해 책임을 이행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 왜 일본 기업의 불법행위를 인정하는 것이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는 결과로 되지 않는가. ‘식민지배의 불법성’이란 식민지배 사실 자체가 불법행위라는 의미다. ‘식민지배의 불법성’이 법적으로 인정되면, 일본은 식민지배에 대한 포괄적인 배상책임을 지게 된다. 강제동원 등 개별 불법행위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에 포괄되며, 그 배상도 ‘식민지배의 불법성’에 따른 배상책임에 포함돼 일괄 처리된다. 샌프란시스코조약에서 전쟁 중 연합국의 “손해와 고통”에 대한 일본의 배상책임처럼 일괄 처리된다. 따라서 일본 기업의 강제동원 불법행위를 인정한 것 자체가, 대법원 판결이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전제로 하지 않은 반증이 된다. 양국 간 법률문서인 한일기본관계조약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한일기본관계조약은 한일병합조약과 그 전에 체결된 양국 간 모든 조약은 “이미 무효(already null and void)임을 확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원천무효(null and void ab initio)’라고 하지 않았다. “이미 무효”임을 확인하는 시점은 기본관계조약 체결일인 것이 분명하나, “이미 무효”인 시점은 특정되지 않는다. 한일병합조약이 원천무효로 해석된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원천무효로 해석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원천무효가 되면 일본의 식민지배는 불법이 되고 그에 따른 배상책임이 대두된다. 그런데 기본관계조약에는 배상이 언급돼 있지 않다. 법리상 청구권협정도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조약이 될 수 없다. 법적으로 ‘식민지배의 불법성’이 인정됐다면 식민지배에 대한 한국 국민의 사죄 요구는 억지가 될 것이다.

일본 기업의 배상 이행으로 피해자 개인의 손해배상청구권 문제가 해결된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정치적 차원에서 받은 피해보상 자금 중 일본 기업 해당분은 이제 이중으로 받는 결과가 된다. 이 부분은 한국 정부가 보전해 주어야 한다. 일본 기업의 법적 배상이 완료됨에 따라 정치적 차원에서 받았던 자금을 돌려주는 셈이다. 일본 기업의 배상과 한국 정부의 보전을 동시에 이행하는 것이 공정하다.

박동실 전북대 초빙교수, 전 주모로코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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