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스캔들’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고든 선들랜드 유럽연합(EU) 주재 미국대사가 궁지에 몰렸다. 선들랜드 대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우크라이나 측에 단순히 전달만 했을 뿐, 실질적 역할은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 맡았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그가 조 바이든 전 부통령 부자를 수사하도록 유도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일찍부터 알고서 움직였다는 폭로가 전·현직 행정부 핵심 실무진에게서 잇달아 제기됐다.

미 하원 정보위원회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열린 팀 모리슨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의 비공개 청문회 녹취록을 16일 공개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와 CNN, 폴리티코 등 미국 언론이 보도했다. 모리슨 전 보좌관은 7~9월 사이 선들랜드 대사가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는 모습을 10여 차례 목격했다고 밝혔다. 바이든 전 부통령을 수사하도록 우크라이나를 압박하는 과정에서 그가 트럼프 대통령의 수족 역할을 맡았다는 것이다.

선들랜드 대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사항을 우크라이나 정부 고위 인사들에게 물밑에서 전달하는 정도의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지금까지 알려져 있었다. 모리슨 전 보좌관의 발언은 선들랜드 대사가 우크라이나 스캔들에서 핵심 역할을 맡았음을 암시한다. 모리슨 전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합의할 권한을 선들랜드 대사에게 부여했다”고 말했다.

모리슨 전 보좌관은 자신의 전임자인 피오나 힐도 선들랜드 대사의 비정상적인 역할을 우려했다고 밝혔다. 그는 힐 전 보좌관이 선들랜드 대사를 ‘문젯거리(a problem)’로 여겼다고 전했다. 모리슨 전 보좌관과 힐 전 보좌관은 선들랜드 대사가 왜 EU 회원국이 아닌 우크라이나 문제에 관여하는지 의문스럽다는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힐 전 보좌관은 바이든 전 부통령의 아들 헌터 바이든이 이사로 근무했던 우크라이나 에너지기업 ‘부리스마’의 이름을 언급했다고 한다.

함께 공개된 데이비드 홈즈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대사관 정무참사관의 비공개 청문회 발언도 선들랜드 대사를 겨냥하고 있다. 홈즈 참사관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26일 선들랜드 대사와의 통화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바이든 전 부통령 부자를) 수사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선들랜드 대사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당신을 무척 좋아한다”며 “그는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들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통화 직후 선들랜드 대사는 홈즈 참사관에게 “트럼프 대통령은 ‘큰일(the big stuff)’에만 관심을 갖는다”고 말해줬다. 홈즈 참사관이 “그 큰일이라는 게 러시아와의 전쟁이냐”고 묻자 선들랜드 대사는 “큰일은 바이든 전 부통령 수사처럼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라고 답했다. 홈즈 참사관의 발언이 맞는다면, 헌터가 부리스마에 관여했던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는 선들랜드 대사의 주장은 거짓이 된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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