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 경찰과 모랄레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15일(현지시간) 코차밤바에서 충돌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에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이 물러났지만 볼리비아의 혼돈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반(反) 모랄레스 진영이 제기한 대선 개표조작 의혹이 대규모 시위로 번지며 대통령의 불명예 사임을 이끌어냈지만 이번에는 친(親) 모랄레스 진영의 대대적 반격이 시작됐다. 연일 이어지는 모랄레스 지지 시위에 경찰이 강경진압에 나서면서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미주인권위원회(IACHR)는 16일(현지시간) 볼리비아 당국이 전날 코차밤바 인근 사카바에서 열린 모랄레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최소 9명이 숨지고 수십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원주민 농부들을 주축으로 한 수천명의 시위대는 사카바에서 모랄레스의 정치적 고향인 코차밤바로 이동하던 중 군·경찰과 충돌한 것으로 알려졌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군경은 군 검문소 통과를 시도하는 시위대를 향해 실탄을 발사했다. 코차밤바 지역 고충처리기관(옴부즈만) 측은 로이터통신에 이번 교전으로 100명 이상이 다쳤다고 밝혔다. 유엔은 친 모랄레스 시위대를 향한 볼리비아 임시정부의 강경 진압 기조에 우려를 표했다.

사임 후 하루만인 지난 11일 멕시코로 망명한 모랄레스 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대학살이 일어났다. 자니네 아녜스 임시 대통령이 이끄는 과도정부가 독재를 벌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자신이 쿠데타로 축출됐다고 주장하며 본국에 있는 지지자들의 시위를 부추기는 등 적극적인 ‘망명 정치’를 이어가고 있다. 볼리비아의 가난한 농촌 원주민들 사이에 짙게 드리운 모랄레스의 그림자가 아녜스 임시대통령과 권력 다툼을 벌이는 모습이다.

모랄레스 전 대통령은 이날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는 “볼리비아 평화를 위해 자신의 역할이 필요하다면 귀국을 고려하겠다”며 정계복귀를 시사하는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첫 원주민 대통령으로서 14년동안 볼리비아를 통치했던 모랄레스 전 대통령이 사라지면서 가려져 있던 인종 갈등 및 지역 격차 문제가 분출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 1825년 독립 이래 볼리비아에서는 도시 지역과 농촌 지역 사이 정치적 갈등이 수없이 반복되며 190회 이상의 쿠데타 시도와 혁명이 있었다. AP통신은 “애초 유럽 이민자들의 후손들이 많고 부유한 동부 저지대와 토착 원주민들이 많고 가난한 서부 고산지대로 분리돼 있는 볼리비아에서 인종차별 담론과 지역갈등 문제가 재출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명백한 대선 개표 조작 정황에도 불구하고 하류층 원주민 농민들은 백인 계열 도시 중산층들이 모랄레스를 쫓아냈다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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